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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꿈의 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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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춘원(春園)의 소설 『꿈』에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대목은 주인공 조신(調信)이 현실로부터 꿈속에 빠져드는 과정이다.비구승(比丘僧)의 입장에서 고을 원님의 딸 달례를 연모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욕망일 따름이다.하지만 그 욕망이 너 무나 절실하고 간절한 것이었기에 주지스님의 명령으로 법당에서 기도하는 사이 꿈이라는 이름의 대체(代替)욕망을 성취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신에게 있어서의 그 꿈은 욕망의 성취라는 측면에선현실과 다를바 없다.다만 꿈에서 깨어난 그가 삶에 있어서 욕망이란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됐다는데서 꿈의 또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같은 조신의 체험은 꿈의 본질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특히 꿈이란 인간이 무의식에 접근하는 가장 확실한 왕도라거나 억눌렸던 무의식적 소망의 충족혹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시도란 이론과는 상치되 는 것이다.
조신의 경우 달례에 대한 연모는 의식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며,꿈속의 체험 또한 현실과의 연장선상에서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프로이트이후 꿈의 해석에 대해선 여러가지 이설(異說)이 제기돼 왔다.현실속에서 오감(五感)을 통해 들어오는자극이 너무 많아 자는 동안 필요없고 잘못된 자극들을 제거하기위해 꿈을 꾼다는 이론이 그중 하나다.「사람은 잊기 위해 꿈을꾼다」는 말도 이 이론에서 비롯한다.
또 하나는 잠은 눈을 움직이는 잠(REM)과 눈을 움직이지 않는 잠(NREM)으로 나뉘는데 REM의 경우에만 꿈을 꾸며,그 꿈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이며 원초적인 순간 두뇌운동 파장이라는 이론이다.과거의 경험을 기억시켜 현재에 처한 상태에서 생존에 필요한 전략을 세우는 행위가 곧 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매몰 3백77시간여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박승현(朴勝賢)양이 꿨다는 몇가지 꿈은 앞의 두 이론에 상당히 접근해있다.고통과 공포를「잊기 위해」 꿈을 꿨으며,「생존에 필요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 꿈을 꾼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朴양이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찍이 포기했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요,살아나지도 못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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