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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豊붕괴 세번째 기적 朴勝賢양 死地의 3백77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언제가 될 지 기약도 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장장 15일 하고도 17시간을 버텨낸 박승현(朴勝賢.19)양.그 시간은67년 구봉광산에서 양창선(楊昌善)씨가 견뎠던 것보다 8시간여나 더 길었다.구조대와의 교신도,물 한모금도 없 었다.생사의 기로에서도 옷을 벗고 있는 게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여리고 순진한 처녀를 끝없는 절망의 터널에서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살아남은 가족들이 품을 한(恨)을 염려했음일까,피지도 못하고스러질 청춘에 대한 미련이었을까.아니면 자신을 그 꼴로 만든 자들에 대한 참을 수없는 분노였을까.어쨌든 믿을 수 없는 기적은 또 일어났다.
사고 당일 오후 朴양은 삼풍백화점 지하1층 아동복 매장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침부터 건물에 금이 갔다는 등 흉흉한 얘기도 들려오고 에어컨도 가동 안돼 마치 한증막에 들어가 있는듯 너무도 더웠던 하루였기에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뿐 오는 손님도 별로 달갑지않은 「이상한 날」이었다.
갑자기 통로가 소란스러워지면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는 순간 「우르릉」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본능적으로 빨리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과 동시에 朴양의 몸은 어디론가 내팽겨쳐졌다.그 다음은 벼락 소리,자욱한 먼지와 파편,그리고 캄캄한 어둠이었다.
눈을 떴을 땐 자신이 어딘가 몹시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는 느낌 뿐 거기가 어디 쯤인지 방향 감각은 전혀 없었다.사방에 무너져내린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날카로운 철골과 파이프등이 삐죽 삐져나와 있었다.
『저게 나를 정면에서 덮쳐 눌렀더라면….』 朴양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어둠의 저편에서 처절한 비명과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말이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고,몸을 일으키려 하자 날카로운 아픔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어깨가 빠진 듯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고 오른 무릎은 칼로 찌르는 듯 쑤셨다.넓적다리도 어디에 심하게 쓸렸는 지 몹시 아팠다. 손을 뻗어봤으나 사방에 만져지는 것은 빈틈없이 자신을 둘러싼 철판과 돌더미 뿐이었고 바닥에는 옷가지와 마네킹이 놓여있었다. 『뭔가 단단히 사고가 난 모양인데….』 자기 힘으로 빠져나가기는 틀린 이상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아스라히먼 곳에서 중장비의 굉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생환의 가능성은 있을 것 같았다.그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바람이 차단된 어둠의 공간은 무덥고 축축했다.朴양은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무서울 때는 얼굴에 덮어쓰기도 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간간이 흘러나오던 주변의 신음 소리가 점점 사그라들더니 나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됐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을까.그러면 나는….』 외부에서 들려오던 기계 소리가 오랫동안 끊어질 때면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감이 엄습했다.팔과 다리의 통증은 계속됐고 온 몸이 가려웠다.
배고픔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으나 갈증은 갈수록 심해졌다.밖에서 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올랐다. 다리가 퉁퉁 부울 정도로 고달픈 백화점 점원 생활….
어머니에게 맡겨 붓고 있는 곗돈 때문에 두달전 그만두려다가 조금만 더하자며 계속 다녔던 것이 이런 화(禍)를 부를 줄이야. 『내가 평소 남들한테 무슨 모진 짓을 했다고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내가 죽으면 엄마와 할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영문도 모르고 죽기에는 정말 억울했다.
갇혀있는 공간은 간신히 엎치락 뒤치락 할 정도의 넓이였다.
마네킹을 만지면서 외로움을 달래고,바깥 소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장기전」에 들어갔으나 점점 기력이 떨어지면서 자고 있는지깨어 있는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아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떠올리기도 하고,노래도 생각나는대로 흥얼거리면서 버텼지만 한계에 이른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나중에 구조대에 내 위치를 알릴 수 있을 텐데….
『죽은 다음의 세계라는 건 어떤 걸까.천당과 지옥은 있을까.
죽더라도 목욕도 못한 더러운 몸으로 구조대에 발견되는건 싫어.
』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눈물이 핑 돌았고,『물 한모금 못 마시면서 눈물로 몸의 수분을 다 빼면 안될텐데…』걱정하면서도 엉엉 울었다.
***할머니.엄마생각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뭔가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멍하던 순간 朴양은 바로 코 앞에서 요란한 기계 소리와 함께 사람 걸어다니는 소리를들었다. 『구조대가 왔나보다….』 반가운 마음에 젖먹던 힘까지다 내어 살려달라고 외치는 순간 플래시 빛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누구 있어요?』 朴양은 자기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불빛을 비추지 마세요.아무 것도 안입고 있어 부끄러워요.』여성의 본능적인 수치심은 朴양이 죽음의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돌아왔음을 알렸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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