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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단>세系 유엔안전지대 유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세르비아系가 유엔이 안전지대로 설정한 스레브레니차를 함락한 데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제공력(制空力)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른 안전지대들을 유린하고 있는 현실은 서방세계가 최근 야심만만하게 구축하려 했던 집단안전보장체 제가 실패로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발칸반도에서 자행되고 있는 세르비아系의 도발에 대한「유화정책」이 과거처럼 확전(擴戰)으로 이어질지,또 NATO가 현재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 불확실하다.그러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집단안보기구나 평화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국제조직은 오래 존속될 수 없다.
보스니아 사태 전개과정에서 유엔과 NATO는 군사행동에 관한한 철저한 무능력과 비효율로 일관해왔다.
이제 이들의 신뢰성은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어떤 종류의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유엔과NATO,그리고 미국이 사실상 패배자의 위치에 서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이나 유럽의 지도자들은 보스니아 사태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이번 전쟁이야말로 정복이 아니라 완전한 파괴,한 민족을 추방하고 제거하는「인종청소」에 목적을 둔 잔혹한 침략의사례로 기억될만 하다.
세르비아系는 전쟁이『전쟁론』의 저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것처럼「적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기 위한 무력행위」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그들이 보스니아 포로들에게 親세르비아 구호를 외치게 만든다든지,유엔 포로들을 유엔군의 공습이 예상되는 지역에 인간방패로 세워둔다든지,상대 유엔측 협상대표에게 식언(食言)을 일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NATO는 미국이 유럽대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적 조직이자 이 지역의 평화를 가능케 했던 가장 중요한 집단안전보장체제였다. 그러나 NATO는 냉전이 끝난후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고 회원국간 응집력과 정체성(正體性)이 흐려졌으며 오늘날 불확실한 회원국과 지휘체계,그리고 유엔과의 불분명한 관계설정등으로 마치 동호인(同好人)단체 수준 조직으로 전락했다.
NATO는 미국의 유럽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됨에 따라 확고한사명감과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반격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NATO가 더이상 자유를 수호하는 방패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머지않아 국제사회에서 일종의 상식으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LA 타임스 신디케이트=本社特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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