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에 앞선 장자(莊子)가 이 말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단한 삶을 꾸려야 하는 육지에 상대되는 말로 강호를 설명했다. 두 마리의 생선이 물 말라가는 작은 연못에서 버둥거리다 결국은 넓은 강과 호수를 그린다는 새김이다. 속세의 먼지 같은 삶을 걷어내고 대자연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말. 즉 세간(世間)의 것을 넘어서는 초탈의 꿈을 말했다.
한편으로는 중국 비즈니스맨의 정신적인 스승인 춘추시대 말기 범려와 연관짓는 사람도 있다. 그가 월(越)나라 구천을 도와 오(吳)를 물리친 뒤 벼슬자리를 마다하고 비즈니스 세계에 나아간 창업의 정신을 설파한 대목이다. 『한서(漢書)』에는 “(범려가) 이어 일엽편주에 올라타 강호로 나아갔다(乃乘扁舟, 浮江湖)”라고 적혀 있다.
강호가 지리적으로는 각각 장강(長江)과 동정호(洞庭湖)를 일컫는다는 말,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물고기가 사는 하천과 소택(沼澤)의 수원지를 가리킨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모두 그 말 자체의 어원과 유래로 간주하기는 힘들다.
이 말은 최종적으로는 ‘일반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정착한다. 무협지의 협객들이 노력 끝에 무공을 닦아 악한들을 물리치는 곳. 그 밑바탕에는 선과 악이 혼재한 가운데 힘든 삶을 이어가는 민초들이 있는 곳. 대개 그런 뜻이다.
강호의 인상은 때론 긍정적이다. 대자연을 향하는 초탈의 정신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해 돈 없고 ‘빽’ 없는 이는 서러움을 참고 견뎌야 하는 부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전제적 황권(皇權)이 수탈을 자행했던 과거 중국 사회 모습이다.
요즘 한국의 강호는 어떤 풍경일까.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한국 사회는 고요하고 넉넉한 장소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올해 들어 국보 1호 숭례문을 태우던 한국 사회의 불안한 기세가 드디어 어린 생명들이 짓밟히고 위협받는 거친 모습으로 이어진다.
사건·사고의 참혹한 정도가 과거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되새겨 볼 만한 대목이 많다. 이 기회에 우리 강호 사회의 물을 길어 올려보자. 그리고 그 물이 썩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보자.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