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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만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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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만우절(萬愚節)은 프랑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564년께 프랑스의 국왕 샤를 9세가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오늘날 사용되는 그레고리력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새해 첫날이 1월 1일로 바뀌었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4월 1일 전통을 고수했다. 그러자 새 역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이날에 새해 선물이라며 빈 상자를 포장해 보낸다거나, 신년 파티를 한다고 가짜 초청장을 보내 헛걸음을 시킨 것이다.

오늘날 만우절은 가벼운 장난이나 거짓말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기념일로 정착했다. 인터넷의 ‘속이기 박물관’ 사이트(www.museumofhoaxes.com)는 만우절 역대 100대 거짓말을 선정해 놓았을 정도다. 악명 높고 황당하며 많은 사람을 속인 순서다.

1위는 영국 BBC-TV의 1957년 뉴스 쇼 보도가 차지했다. 스위스에서 올해 스파게티 나무 농사가 대풍을 기록했다며 수확 현장의 영상까지 내보낸 것. 재배 방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자 BBC는 답변했다. “스파게티 한 가닥을 토마토 소스 깡통에 넣고 잘되기를 빌어라.”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타코 벨사의 광고는 4위에 올랐다. 96년 독립의 상징인 ‘자유의 종’을 정부로부터 사들여 ‘타코 자유의 종’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주장한 것. 사실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백악관 측은 답변했다. “링컨 기념관도 팔려서 ‘포드 링컨 머큐리 기념관’으로 이름이 바뀌게 됐습니다.”

77년 영국 가디언지의 특집 보도는 5위를 기록했다. 인도양에 ‘샌 세리프’란 섬나라가 있다며 ‘최고의 휴양지’라고 무려 7쪽에 걸쳐 상세히 소개했다. 이 특집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에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해마다 만우절 기사를 싣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그 영향이 일본에까지 미친 것일까. 99년 아사히 신문은 정치면에 “일본 정부가 정계의 심각한 인재난을 해소하는 긴급 대책으로 외국인도 각료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각료 빅뱅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 TV들은 이를 아침 뉴스로 소개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1면의 기사 안내 “오늘은 만우절, 가공의 기사가 하나 있으니 알아맞혀 보세요”를 미처 보지 못한 탓이다.

1일 구글 코리아 사이트에서 ‘사투리 자동 번역’(www.google.co.kr/landing/saturi)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한 만우절 기획은 웃음을 자아낸다. “저기 있는 저 아이는 누구입니까?”는 “자~는 누꼬?”(경상도 사투리의 경우)로 번역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제 만우절은 지나갔지만 ‘한번 웃어 보자’는 유머 정신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세상살이가 팍팍할수록 웃음은 더욱 필요한 것이니까.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