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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차이나’, 명품으로 화장 고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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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중국 브랜드들이 약진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패션 위크’에서 모델이 디자이너 첸정훙의 최신 패션을 입고 선보이고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에 있는 컴퓨터업체 ‘롄샹(聯想)집단’. 1층 로비를 ‘올림픽 전시관’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로는 유일하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식 파트너가 된 뒤 생긴 전시관이다. 류천페이(劉辰飛) 정치사무부 고급경리는 “올림픽 후원으로 ‘레노보’ 브랜드의 신뢰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롄샹은 2005년 미국 IBM의 컴퓨터 부문을 12억5000만 달러에 사들인 뒤 2년여 적자에 시달리다 지난해 간신히 흑자 반전했다. 류 경리는 “고난이 많았지만 IBM 컴퓨터 부문 인수로 레노보가 세계에 데뷔할 수 있었다”며 “올림픽 후원에 돈이 많이 들지만 브랜드 인지도 제고효과를 따지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대기업들도 ‘브랜드 경영’ 대열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과 글로벌 경쟁을 하려면 ‘중국 브랜드=싸구려’라는 뿌리 깊은 통념을 깨야만 한다는 인식이 번진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는 2005년 ‘기업마다 독특한 브랜드를 내세우고 키우라’고 독려 지원한 뒤 이런 추세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대회에선 후진타오가 ‘글로벌 중국 브랜드’를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민·관이 하나 된 ‘주식회사 중국’이 브랜드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브랜드 마케팅 시대=베이징 올림픽을 브랜드 육성의 호기로 삼으려는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유제품 업체 멍뉴(蒙牛)와 이리(伊利)는 올림픽 비공식 후원업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했다. 승자는 멍뉴. 이에 이리는 올림픽 개·폐막식 중계방송시간의 1분짜리 광고를 2008만 위안(약 26억원)에 사들였다. 브랜드를 알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게 요즘 중국업계의 새로운 패턴이다.

소비자들을 가르쳐가며 구매 저변을 확대하는 ‘지식 마케팅’ 기법도 활발하다. 생수 업체인 농부산천(農夫山泉)은 광저우(廣州)·선전 등지를 중심으로 생수의 알칼리 농도를 측정하는 마케팅을 벌였다. 덕분에 알칼리성 정도가 생수 선택의 기준으로 부각되면서 생수 매출이 뛰었다. 농부산천은 과학적 브랜드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초상(招商)은행은 아파트나 회사를 찾아다니며 재테크 교육을 해 주고 브랜드 파워를 키웠다.

◇정부가 홍보 주체=중국 상품은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반면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게 큰 약점이었다. 중국 정부가 짜낸 아이디어는 최신 소비재 공장을 관광코스로 개발해 소비자에게 생산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베이징 외곽 중국 과일주스 1위 업체인 후이웬이 그런 곳이다. 공장 벽을 유리로 만들어 대규모 무인자동화 공장 내부를 방문객이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우충콴(吳重寬) 부총경리는 “시정부 권유로 공장을 개방했지만 제품이 위생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믿음을 키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자국 브랜드를 지원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지난해 초부터 중국 스포츠 채널의 사회자와 기자들은 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李寧)의 옷을 입고 방송한다. 이 업체는 1980년대 세계 체조계를 주름잡은 체조 영웅 리닝이 세운 회사. 이런 방송마케팅은 리닝과 중국 중앙TV스포츠 방송이 함께 벌이고 있다. ‘중국 경영보’에 따르면 리닝의 브랜드 인지도는 올림픽 공식 합작 파트너인 아디다스보다 2배 이상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王府井) 거리의 리닝 매장엔 현지 젊은이들로 붐빈다. 매장에서 만난 인푸(尹福)는 “중국 선수들도 리닝을 즐겨 입는다. 과학적인 스포츠 의류라는 점에서 나이키 못지 않게 좋아한다”고 전했다.

컴퓨터 제조사 레노버 직원들이 베이징 본사에서 제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베이징 AFP·AP=연합뉴스]

◇중국발(發) 중국풍(風)이 뜬다=최근 맥킨지가 중국 소비자 5000명을 상대로 소비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중국인의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용품과 미용품·식음료 제품에 대한 선호도 조사였다. 그 결과 자국 내 브랜드를 더 선호한다는 응답 비중은 53%로 2005년(46%)보다 커졌다. 외국 브랜드가 더 좋다는 응답은 5%에 불과했다. 같은 값과 성능이면 국내 브랜드를 사겠다는 소비자가 59%였다. 평면TV의 경우 63%가 ‘국내 브랜드가 더 좋다’고 응답했다. 이에 맥킨지는 “외국 업체들이 중국에서 장사하려면 외국 브랜드임을 숨기는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중국 언론이 대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리닝(스포츠 용품)·다바오(大寶·남성 스킨 제품) 등 중국 브랜드가 소니·노키아·나이키 등 해외 다국적 기업 브랜드와 함께 선호 브랜드로 선정됐다. 한국 브랜드로는 인터넷 게임 ‘카트라이더’가 유일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선영 연구원은 “근래 중국의 문화코드는 ‘중국적 가치의 재발견’으로, 일상 제품에서도 중국풍을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고도 경제성장과 올림픽 유치 같은 쾌거가 중국인의 자존심을 북돋웠다는 것이다. 박한진 KOTRA 중국팀 차장은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브랜드 충성도를 더욱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도 중국의 이런 분위기를 잘 읽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무역협회 특별취재팀

중앙일보=양선희·이철재 기자
한국무역협회=김경용 아주팀 차장, 정환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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