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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업+우리 ‘메가뱅크’ 불씨 살아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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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꺼졌던 ‘메가뱅크(초대형 은행)’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메가뱅크 구상은 산업은행·기업은행·우리금융을 함께 묶는 초대형 은행을 만들어 민영화하자는 것이다. 3개 은행이 합치면 자산규모 546조원으로 세계 30위권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안은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확정, 발표하면서 폐기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산은 민영화안은 3개 은행을 각기 따로 민영화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반전이 이뤄졌다. 금융위가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산은 민영화 방안을 확정 지으려는 순간, 배석했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강 장관은 “한국 경제 규모는 동북아에서 3위인데 최대 은행은 70위 정도밖에 안 된다”며 “산업은행 민영화는 아시아 10대 은행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이 수십 개 은행을 2개로 통합해 (세계 10대 은행에 진입하면서)세계 금융의 키플레이어로 나서고 있다”며 “세계 70~80위 은행만 5~6개 있어서는 아시아 금융허브는커녕 국제시장 자본 조달에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에 우리금융과 기업은행까지 통합해 초대형 은행을 만들자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이 대통령은 “규모 면에서 경쟁력이 대두되고 있으니 그 문제까지 포함해 4월 중에 논의하자”고 정리했다. 강 장관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것은 아니지만, 테이블에서 치워졌던 메가뱅크 안을 다시 테이블 위로 올리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정부 소유인 3개 은행을 따로 팔겠다는 금융위 결정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다”며 “금융위에 메가뱅크의 장단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메가뱅크 구상은 한국 금융의 오랜 숙제였다. 금융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세계적인 금융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초대형 은행이 절실하다는 논리에서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 간 인수합병(M&A)을 권장해 왔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미완에 그쳤다. 지난 10년간 몇 차례 M&A가 있었지만 아직 국내 은행의 덩치는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국내 최대인 국민은행이 세계 72위(2006년 말 총자산 기준)다.

은행들도 자발적으로 M&A에 나서지 않는다. 한 금융계 CEO는 “국내 은행에선 경영진도 노조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M&A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풍토에선 애초 메가뱅크 탄생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부는 정부 소유 은행을 합치는 이번 기회가 메가뱅크 탄생의 적기라고 보고 있다. 강 장관이 “한 번 놓치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우선 매각의 어려움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금융 공기업을 묶어 팔 경우 민영화가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덩치가 너무 커지면 살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논리다. 초대형 은행이 곧 글로벌 플레이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10년 전 자산 규모 세계 1~5위 은행이 모두 일본 은행이었지만 미국 고객들의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산은 관계자는 “3개 은행은 겹치는 분야가 많아 통합의 시너지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덩치가 작을수록 민영화하기 좋은지는 짚어볼 문제다. 박병원 우리금융 회장은 “삼성전자가 덩치 크다고 살 사람이 없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장에서 매력을 느끼도록 만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메가뱅크 구상이 먹혀들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민영화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껏 546조원 규모의 공룡을 만들어 놓고 민영화하지 않으면 시장을 독식하는 ‘암적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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