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휘발유값의 93%라니 … 경유차의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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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김모(38)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집에 세워두고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요즘 경유 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1일 김씨 집 근처 주유소는 휘발유를 L당 1720원, 경유는 L당 1600원에 팔고 있었다. 경유가 휘발유 값의 93%나 된다. 김씨는 “정부가 경유 값을 휘발유의 85% 수준에 맞춘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차를 샀다”며 “경유차로 바꾼 게 정말 후회된다”고 말했다.

경유 값이 치솟아 휘발유 값에 육박하면서 SUV 등 경유차 이용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름 값이 싸다는 이유로 (휘발유차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경유차를 구입했는데 가격 메리트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경유차 구입도 갈수록 줄고 있다. 2004년 당시 35.6%였던 경유차 구입 비율은 올 2월 말 24%로 확 줄었다. 대신 휘발유차는 42.3%에서 50.2%로 크게 늘었다.

운송이나 장사 등 경유를 넣는 화물차나 승합차로 생계를 꾸려가는 서민의 고통도 커졌다. 이들에게 경유 값 인상은 곧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트럭에 농산물을 싣고 주택가에서 판매한다는 한모(56)씨는 “기름 값이 올라 물건 값도 올려야 하는데 값을 올리면 안 팔리고, 안 올리자니 이윤을 내기 어렵다”며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왜 정부가 약속을 어기고 경유 값을 올리느냐”며 “당장 휘발유 값의 85%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경유값 왜 더 올랐나=정부는 2004년 3년에 걸쳐 경유 값을 휘발유 값의 85%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경유 사용을 줄여 환경 오염을 막겠다는 이유였다. 당시 경유 값은 휘발유 값의 70% 정도였다. 올리는 건 간단했다. 세금을 올리면 됐다. 당시만 해도 국제 경유 값이 국제 휘발유 값보다 쌌던 때라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경유에 붙는 유류세를 L당 31원 끌어올리면서 경유 값 대 휘발유 값을 85대 100으로 맞추는 에너지 세제 개편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올 들어 국제 경유 값이 휘발유 값보다 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불거졌다. 올 들어 국제 휘발유 값은 7.6% 올랐지만 경유 값은 두 배 가까운 14.7% 뛰었다. 지난달 31일 국제 휘발유은 배럴당 105.28달러였지만 경유는 123.89달러였다. 국제 경유 값 급등은 곧바로 국내 경유 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내 정유업계가 국내 경유 가격을 정할 때 국제 경유 값에 연동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구상한 휘발유 값 대 경유 값 100대 85 비율도 깨지게 됐다. 경유 값을 85%로 유지하려면 정유업계가 가격을 내리거나 정부가 세금을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되레 올리지 않는 것도 다행이란 입장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국내 경유 값은 올 들어 5.6%만 올라 국제 경유 값 인상분을 다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 안 내리나 못 내리나=정부도 경유 값을 내릴 생각은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85%로 한 것은 국제 수준을 감안한 것”이라며 “국제적으로 경유 값이 휘발유 값보다 오르고 있는데, 국내 경유 가격을 내리기 위해 세제를 손대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낮추지 않는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시각도 많다. 전체 기름 사용량으로 보면 휘발유보다 경유가 많다. 2006년 국내 경유 소비량은 1억4243만 배럴로 휘발유(5987만 배럴)의 2.4배나 된다. 자연히 경유에서 거두는 세금도 휘발유보다 압도적이다. 경유에 붙는 세금을 깎아주면 세수가 큰 폭으로 줄어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세금을 깎아주자니 세수 구멍이 우려되고, 놔두자니 서민 경제에 주름이 깊어지는 만큼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서강대 이인실 교수는 “정부 정책을 따랐다가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문제”라며 “특히 생계형 경유 사용자에겐 에너지 바우처를 주는 등 서민층을 겨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렬·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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