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정치와 경제 다른점.같은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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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네 선거들이 한꺼번에 실시되었는데도 선거운동에서 개표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일들이 드물었다.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뜻이 지방선거에선 드물만큼 또렷한전언(傳言)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선택은 개인적 선택보다 여러 모로 거칠고 투박하다.특히 선거에서 참정권으로 하는 투표는 시장에서 구매력으로 하는 투표처럼 자주 이루어지고 정교할 수 없다.
정치엔 할부판매나 선물거래와 같은 제도들에 상응하는 것들이 나올 수 없다.바로 그 점에서 사회적 선택에 관한 결정들인 정치와,주로 개인적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는 다르다.
자연히 투표자들은 오랜만에 주어진 자신들의 한 표에 되도록 많은 전언들을 되도록 또렷이 담으려고 애쓴다.그래서 모든 선거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집권 세력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그러나 그런 전언은 사회적 선택의 투박함 때문에 흔히다른 전언들과 뒤섞여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유권자들은 이번엔 이길 가능성이 높은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현 정권에 대한 깊은 불만과 불신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선거 결과에서 꼭 짚어내야 할 대목은 김대중(金大中)씨나 김종필(金鍾泌)씨의 호소에 끌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향력을 자신들의 전언을 전달하는 수레로 이용한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절실한 요구와 합리적 전략을 지역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고「PK」란 말이 나오도록 한 현정권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오만이기도 하다.대중 매체들은 한결같이「반민자(反民自)정서」라는 완곡어법을 쓰지만,선거 전 후에울분을 토한 사람들은 아무도 민자당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권력과 그것에 따르는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민초(民草)들이라고 왜모르겠는가.
안타깝게도 그런 전언을 받을 사람들은 그것을 호되게 비판했다.「삼풍백화점 참사」까지 덮쳐 궁지로 몰린 뒤에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으로선 섭섭할 것이다.
그동안 이룬 일들이 많았다고 여길 것이고 자신의 인기를 가장많이 깎은 대형 사고들만 하더라도 대부분 이전 정권들에서 싹이텄다.그래도 반구(反求)하라는 옛 말씀은 적절할 수밖에 없다.
돌아다보면 「PK」니,「가신집단」이니 하는 말들이 들리게 된사정은 金대통령의 지지기반을 아주 좁혔다.『기업가들이 근로자들에게 잘 해주면 노사 분쟁은 없다』는 충고는 정치적 투쟁을 곁들인「한국통신 사태」에서 스스로 무너졌고,『민족 을 앞세우면 안 풀릴 것이 없다』는 대북(對北)정책은 협상 시작도 전에 서둘러 약속한 경수로 부담금에다『외국에서 사서라도 주겠다』는 쌀을 덤으로 얹고도 이인모씨의 기억이 흐릿해진 지금까지 납북 어부 한사람 구해내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국정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던 金대통령이 치른비싼 수업료라 치더라도 어떤 기업가가 눈밖에 나면 해를 두고서돈줄을 조이고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경제적 손실을 부른 일,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도록 하면 정치적 운세가 풀린다고 믿는 태도는 시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투표와 시장은 사회적 신호기구(signalling device)들이다.하나는 시민들의 정치적 전언들을 전하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전언들을 전한다.그런 전언들이 제대로 전달되고 해석되지 않으면 시민들이 바라는 정치적.경제적 재화들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다.바로 그 점에서 정치와 경제는 같다.
이런 선거의 전언을 지역이기주의로 여기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지역적 대립이야 어디에나 있고,앞선 나라들에서도 상당히 심각하다.
독자적 언어를 부활시켜 공용어로 쓰고 분리주의자들이 득세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껴안고 고뇌하는 영국에 비겨보면 이내 깨닫게 되듯이,우리 나라의 지역적 대립은 크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걱정할 것은 정당들의 지역적 편중이란 모습에 담겨 나온 시민들의 전언이 옳은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전언은 사라지고 그것을 담았던 모습만 실제로 지역이기주의로 굳어질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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