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원로의 고언

2. 政·經 분리 틀 짜는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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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아 온 나라가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들이 많다. 그러나 18년 장기 집권 정권 후의 권력 진공을 가져온 10.26사태 이후 닥친 2차 석유파동과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한 경우에 비추어 볼 때 길어야 6개월의 한시적 직무정지 기간 중 고건 대통령권한대행 중심으로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해 나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탄핵에 대한 찬반 논란이 새로운 사회불안 요인이 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국민이 각자 제 자리를 지키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 탄핵 정국 이후가 더 문제

탄핵 결의가 있은 12일 증시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번 탄핵 사태에 따른 정치 불안정으로 당장 경제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대외 신인도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헌법 질서에 따라 대통령 탄핵을 극복해 가는 성숙된 자세를 보인다면 오히려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와 신인도를 한 단계 높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 해결능력'에 대한 평가가 신용도 평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가계부채.청년실업 문제 등 산적한 경제 현안 해결을 제대로 대처해갈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이 또한 이헌재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유능한 행정관료 집단이 흔들리지 않고 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안해 할 것은 없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 탄핵 정국이 아니더라도 중.장기 과제는 총선 이후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총선과 탄핵 정국 이후에 있다. 총선이 끝나고, 또 탄핵에 관한 헌재의 판결이 나오는 것으로 우리 정치가 안정을 되찾고 경제에 전력투구하게 될 것인가에 있다.

과연 이제까지의 '경제는 뒷전이고 정치 게임에만 열중'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달라질 것인가. 경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세계 여러 나라처럼 우리도 경제 제일주의로 과연 복원할 것인가. 대통령의 국정 개혁의 최우선 순위가 경제 살리기와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두어질 것인가. 2만달러 소득 달성이라는 비전을 확고히 제시하고 국민의 역량을 그 방향으로 결집해 가는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어갈 것인가.

요컨대 탄핵 이후의 정치가 경제를 앞장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정치권과 행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던 일은 빛바랜 '경제 개발의 추억'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대선 비자금 수사와 탄핵 정국에 휘몰리면서 정치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어떻게 정치개혁을 추진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정경유착을 없애고,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틀을 짜는 것이 개혁의 주안점이어야 한다. 기업이 본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최소한 기업 활동에 발을 거는 일이나 짐을 지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

*** 기업이 본업 열중하게 해줘야

정치인을 탓하기보다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 가야 할 것이다.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업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정치력보다 법질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핵심은 법치주의의 확립에 있다. 사실 노사 문제도 그 격렬성 못지않게 실정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데에 있다. 법대로만 확고히 자리잡으면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투자도 늘 수 있다.

탄핵 정국 등 정치불안 상황에 경제가 함께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정경 분리'가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틀을 보다 굳건히 하고 법치주의 확립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경제의 면역력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 기업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정립하는 일에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강경식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 전 경제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