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군에 유언남기고 간 李承娟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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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내 이름은 이승연입니다.이제…죽으려나 봐요.』 2백30시간만에 살아나온 최명석(崔明錫)씨는 같이 매몰됐던 삼풍백화점 여직원 한사람이 자신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고 말했다.
이를 TV로 지켜보던 이승연(李承娟.24)양의 가족은 그동안참아왔던 오열을 한꺼번에 쏟아냈다.딸의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유언만을 전해듣게된 어머니 李성염(51)씨는 딸의 사진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그렇지만 살아있을수도 있어요.아 이구,착한 내딸아』하며 통곡했다.
李양은 서울정릉여상을 졸업한뒤 도자기회사인 백산상사의 파견직원으로 삼풍백화점 지하1층 도자기매장에 3년5개월동안 근무해왔다.오전8시 서울성북구종암동 집을 나서 오후10시쯤 들어오는 고단한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평소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안했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수차례 우수사원표창을 받을 정도로 모범사원이었던 李양은 1년전께 회사측에 집에서 가까운 미아리 백화점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다.하지만 3년5개월동안 李양의 성실성을 지켜본 회사측은 고객이 많은 삼풍백화점에 계속 머무를 것을 권유했 다.
매주 토요일 한번씩 본가에 들르는 큰오빠 영국(英國.29.회사원)씨는 사고 전날인 지난달 28일 왠지 동생을 보고 싶다는생각이 들어 종암동 집을 찾았다고 한다.
『오빠,내 걱정은 하지마.돈많이 벌어 엄마.아빠 여행도 시켜드리고 시집도 갈거야.』 오빠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통닭을 사서 퇴근한 李양이 남긴 이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오빠 李씨는 울먹였다.
〈金秀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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