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야기가있는요리>북어튀김-연극인 이정섭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연극인 이정섭(李正燮.50.서울은평구녹번동)씨를 만나러 갔을때 그는 식당아주머니들과 둘러앉아 손님상에 낼 호박잎을 다듬고있었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마담아저씨」역으로여성화된 남성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던 그는 생업인 정통서울음식점「종가집」사장이자 주방장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손맛」을 과시하기 위해 일일이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꽃꽂이나 요리는 하고 싶은 반면 못질을 하면 헛망치질로 손가락을 때리기 일쑤였다고 웃음짓는 그는 집안 내력으로인해 제대로 된 요리솜씨를 익히게 됐다고.
조선조 중종의 다섯째 아들인 덕양군의 14대 종손으로 13대째 서울 은평구녹번동 유지로 살아온 터라 달마다 찾아오는 제사와 집안어른 생신 준비로 그의 어머니 손이 마를 날이 없었다.
생신이 다가오면 20여일 전부터 콩나물 기르고 녹 두 갈아 청포묵을 쑤며 두부만드는 일이 시작됐다.국민학교 5학년때든가,집안 여자들의 송편빚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싶어 만든게 요리에의 입문이었다.『신통한 녀석이네.그래도 자꾸하면 못쓴다』고 칭찬반 야단반을 들었지만 일 손이 달릴때면 그는 서슴없이 달려들어 바쁜 어머니를 도왔다.대학시절 4년동안 추석때면 항상 이틀전부터 학교도 가지 않고 녹두갈아 전을 부치고 너비아니도 구웠다.김장이나 장담그기도 그의 빠질 수 없는 연례행사였다. 북어구이.북어찜.북어전보다 고급요리라고 소개하는 북어튀김도 바로 그때 익혔던 것.그는 지난 89년 음식점 「종가집」을 내면서 서울음식답게 북어의 구수하면서도 담박한 맛이 넘치는 북어구이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고.
『요리란 입으로 배울수 있는게 아니고 직접해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그는 TV촬영이나 연극공연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직접 음식 간하고 김치를 담그며 새로운 요리 개발에도 열심이다.
메주쑤는 것에서 김장담그기까지,그리고 가지나물은 조선간장으로,호박나물은 새우젓으로 간한다는 등 잊혀져가는 서울음식의 진수를전파하는 일에 신명을 바치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文敬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