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미국은 아시아정책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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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금 미국의 對아시아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최악의 상태에놓여 있다.
한국동란때에도 미국은 공산국가들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과는 돈독한 관계에 있었으나 최근 클린턴행정부는 일본.중국에 대해 동시에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동들을 취 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왜냐하면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가동시에 악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클린턴정부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인 세력균형전략을 포기하고 그 어떤 새로운 전략개념을 적용하고 있는 것일까.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오히려 현 미국정부 지도자들은 아시아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개념의 필요성을 의식 하지 못하고 對일본 관계와 對중국 관계를 따로 취급하면서 무엇보다도 미국의국내정치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이유는 무역불균형 문제에 있다.최근클린턴정부는 일본 자동차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면서 일제 고급 승용차에 대해 60억달러 상당의 수입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었다.이 문제는 지난달 28일 일본의 형식상 양보 로 일단락됐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미국산자동차를 대량 수입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자동차 문제를 둘러싼 美日간의 대결은 결국 일본국민의 대미(對美)감정만 악화시킨 셈이다.
美국방부는「나이 이니셔티브」(Nye Initiative)에서보듯 대일(對日)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미국내의분위기는 일본이 시장을 개방할 때까지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이처럼 미국의 대일 압력이 계속되면 일본은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일본여론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미국의 對중국 관계는 최근 리덩후이(李登輝)대만총통의 방미(訪美)를 허락하면서 가시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李총통의 방미도 미국이 1차적으로 對중국 정책을 고려한데서 나온 결정이 아니고 공화당 보수세력의 요구를 들어주는 국내정치의 과정에서 취해진 결정이다.미국의 중국정책은 근본적으로두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첫째는 중국의 인권문제다.미국은 냉전종식후 대외정책의 목표를 시장경제와 정치민주주의 전파로 정의했는데,이런 정책은 중국입장에서 보면 내정간섭으로 볼 수밖에 없다.둘째 문제는 중국의 고도성장에 따른 군사력 증강으로 美中간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우려하고있는 미국이 실제로 중국을 견제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더라도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으레 그런 저의를 갖고 있다고 믿기 쉽다.따라서 상황 자체가 美中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對중국.일본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극히 바람직스럽지 못하다.앞으로 북한문제를 처리해 나가는데있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그런데 미국의 對중국및 對일본 영향력이 감소된다는 것은 그만큼 동북아 지역에서 한반도의 장래를 조정해 나가는데 있어 한국의 외교적 부담이커지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문제는 실제로 이미 북한핵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나타났지만 앞으로 북한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등장 할 것이 틀림없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제한돼 있다.그러나 미국의 아시아정책 문제에 대해 우리는 조용히,그러나 설득력있는 방법으로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우리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 리한가 하는문제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물론 미국은 무엇보다 미국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그런데 한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즉 일본시장의 실질적인 개방과 중국의 민주화및 군사정책 의 자제등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목표다.그러나 미국이 생각해야 할 점은 과연 일본에 대해 국제적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일본시장을 개방하는데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와 중국 인권상황을 공개적으로 문제삼는 것이 중국의 민주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의 효율성 문제다.그리고 특히 중국과 일본을 세력균형정책면에서 시간적 차원에서 조정할 수 있는 지정학적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미국정책의 궁극적 목표와 일치하는 입장에있는 한국은 미국에 대해 정책차원에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입장에 있는 맹방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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