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예 거리로 변한 진주~산청 국도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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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김모(50)씨는 토요일이면 목공예 배우는 재미에 빠진다. 올해 초부터 진주시 명석면 외율리 국도(3호)변 한송공방에서 목공예를 배우는 3시간이 짧기만 하다.

김 교수가 배우는 과정은 3개월짜리 소목장(小木匠) 기초. 가구제작 부문 김병수(55)명장으로부터 대패 제작부터 먹줄 긋기, 끌로 구멍 파기, 톱질을 배웠다. 김교수는 “나무냄새 맡으며 대패질을 하는 것이 좋고 소품이라도 만들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수강생은 김 교수 외에 주부와 직장인 등 20여명이 더 있다.

진주∼산청간 국도 주변이 목공예 거리로 변하고 있다. 목공예 대가들이 운영하는 공방 10여곳이 성업을 하면서 취미로 목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도 몰리고 있다. <위치도 참조>

◇대가들의 거리=이곳에서 목공예 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20년 이상 외길을 걸어오면서 공인을 받은 대가들이 대부분이다.

한송공방 대표 김씨는 2004년 노동부로부터 가구제작 명장으로 선정됐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정돈산(작고)선생 밑에서 소목을 배운 그는 1986년 이후 전승공예대전에서 13차례 수상한 경력을 자랑한다. 한송공방에서 취미로 목공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소목 다듬이들의 만남’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수·토·일요일 세차례 열리는 목공예 교실의 수강료는 월 10만원으로 싸기 때문에 서울서 오는 사람도 있다.

웅석공방 김동귀(53)대표는 진주산업대 인테리어 재료공학과 교수다.

지리산 나무로 관광민예품을 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전통공예품 경진대회 대상(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99년)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에다 경남도 문화재 전문위원이다.

단원공방 정진호(57)대표는 경남무형문화재 29호다. 그도 정돈산 선생의 제자로 이조가구와 목조각품을 주로 만들고 있다. 취목공방 조복래(45)대표는 지난해 10월 800년된 느티나무로 만든 상감삼층장으로 문화재청장상을 받은 실력파다.

◇다양한 제품=이곳에서 만드는 제품은 이조가구와 같은 전통가구,원래 나무 모습을 살린 예술가구, 몸에 걸치는 장신구, 관광 민예품, 차 도구, 괴목공예, 뿌리공예 등 다양하다.

웅석공방은 나무로 장수하늘소 같은 곤충모양 장신구, 목걸이, 줄 넥타이 등 관광민예품을 만든다. 지리산 식물에 뽑아 낸 천연염료를 사용한다. 나무의 원래모습을 살린 예술가구도 만든다. 제석공방(염성권·45)은 나무뿌리로 생활장식가구를 주로 만든다. 나무 결과 나이테를 살린 자연스런 제품이 특징이다.

진주괴목 고판선(47)대표는 차숟갈, 다식 그릇, 찻잔을 주로 만든다. 느티나무를 다듬은 뒤 붓으로 옻칠을 한 다식 그릇은 개당 4만∼5만원에 팔린다. 수석받침대를 만드는 진주수석원, 옛 가구를 만드는 고전공방도 있다.

진주에 소목장들이 몰린 것은 지리산에서 나오는 다양한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이조시대 사대부 집에는 진주 소목장들이 만든 가구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김상진 기자



단원공방 정진호 소목장 “나무는 죽어서도 천년간 숨 쉽니다”

단원공방 정진호 소목장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나무는 천년동안 자라고 죽어서도 천년동안 숨을 쉽니다. 이러한 나무를 잘 다스린다면 이 세상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단원공방 정진호 대표(사진)가 설명하는 목공예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요즈음 새 논개영정을 안치할 영정단을 마무리 하느라 바쁜 그는 “목공예는 치밀해야 하고 순서를 뛰어넘을 수 없어 청소년들이 배우면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8년 제14회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숭숭이 반닫이’가 장려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각종 공예대전에서 30여 차례 상을 받았다.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16살때 상경해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목조각 업체에 배달간 것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월급없이 2년간 기술을 배운 뒤 불상을 모셔놓는 단(佛壇) 조각 업체를 거쳐 소목장이 유명한 진주로 왔다. 당대의 유명한 소목장이었던 정돈산(중요무형문화재 55호, 작고)선생에게서 20년간 배운 뒤 96년 독립했다.

무늬가 좋은 나무에 홈을 파고 무늬를 넣는 상감기법과 목조각이 그의 주특기다. 그의 불단 작품은 해인사와 국내 주요 사찰에 납품됐다. 그는 본드와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소가죽을 끓여 만든 아교풀과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 부레풀을 고집한다. “둘째 아들(27·진주산업대 대학원 임산공학2년)이 소목장을 전수 받고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내가 모아둔 나무로 아들이 더 좋은 소목작품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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