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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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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랜 진통 끝에 구성된 제1기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대통령 직속 5명의 상임위원이 합의제로 운영하는 위원회는 방송·통신 및 디지털 시대의 유·무선 미디어 관련 모든 정책을 총괄하는 막강한 기관이다. 최근 세계 각국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을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 창출을 국가 경쟁력 확보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의 효과적 관리를 위한 기구의 도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방통위 출범은 미디어 혁명에 대처하기 위한 세계적 조류에 우리도 동참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위원회의 출범 과정에서 위원장의 인선 관련 문제로 반목과 대립 양상이 크게 부각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인 위원회의 존재이유와 효율적 운영방법에 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물리적으로 결합된 방통위가 과연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과 통신업계 사이에 존재했던 그간의 인식차이를 감안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걱정이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영역이 무너지게 되면, 월등한 자본과 기술력을 지닌 통신업자들이 방송을 일방적으로 흡수하게 될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방송인들 사이에 널리 팽배해 있었다.

이에 비해 통신업자들은 지상파방송 사업자들이 방송의 공익성 개념을 앞세워 자신들의 진입을 봉쇄하고 불공정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방송이 지나치게 정치나 이념 논리에만 치우친 채, 새로운 시장형성과 같은 산업적 측면을 소홀히 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가장 시급한 업무는 방송과 통신이 상호 배타적인 대립적 구조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상호 보완적 관계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는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한 국가의 경쟁력은 더 빠르게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유·무선의 광대역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는가와 또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콘텐트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이 서로의 발전을 위해 화학적 결합이 필요하며,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 요소라는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방송과 통신 관련 규제체계 및 법제도를 방송·통신 융합의 현실에 맞도록 유연성 있게 개선하는 일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미 콘텐트 전송서비스·전송네트워크 등의 분야가 모두 통합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체나 서비스 영역별 구분에 의한 규제는 이제 실효성을 잃게 되었다. 예를 들어 통신이 방송영역에 진입하는 IPTV 서비스나, 케이블의 통신사업 진출, 신문과 방송의 겸업 허용 등이 이런 기술적 통합과 관련해 그동안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이다. 그러나 작금의 기술융합 추세나, 세계시장의 개방화에 따른 외국 거대자본의 국내시장 진입 등의 변수 등을 고려해 볼 때 어떤 형태로든 그 허용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이왕에 맞이하는 디지털 시대, 앞서서 선진적인 정책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던 기형적 공민영 방송제도 개편에 관한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해 볼 때가 되었다. 방송의 디지털화로 조만간 사용 가능 채널 수가 지금보다 여러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지상파방송의 위상과 역할에 근본적인 재조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통위는 방송·통신 융합의 결과로 발생하는 산업적 효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사회문화적 측면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건전한 여론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문화의 질적 수준이 유지될 때에만 진정한 사회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업과 문화 양자를 조화시키는 정책 방향이 필요한 이유다.

김영석 연세대·언론홍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