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북극리포트>5.드디어 1차 보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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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李대원은 깨끗한 눈을 골라 버너에 녹이고 밥을 짓느라,金범택대원은 우리의 「작은 발전소」인 태양열충전장치와 무전기 등을 살피느라 부산하다.극지에선 버너 불붙이기부터가 손쉽잖다.밤사이에 꽁꽁 언 버너예열에만 30분 이상씩 걸리는가 하면,러시아에서 구입한 휘발유 연료가 미국제 「콜맨」버너에 맞지 않아 李대원은 거의 매일 버너 두 대를 분해.조립하느라 손끝에 숯검댕 자국이 가실 날 없다.
일제 건조밥(=알파米)에 고기와 야채 등을 말려 섞은 고칼로리(1인당 하루 5천칼로리)건조식이 우리의 주식이다.여기에 물만 부어 하루 세끼를 해결한다.물이 많으면 죽,적으면 밥이 되는 셈이다.언제나 비빔밥이므로 반찬은 따로 없다.
점심시간은 10분이면 족하다.아침에 남은 밥을 각자의 보온병에 담아 훌훌 마시는 식으로 때워버린다.초콜릿과 등산용 비스킷은 간식이지만 또다른 주식이기도 하다.부족한 영양보충을 위해 우리는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이것들을 우물거린다.저녁 무렵 안전한 구빙대(舊氷帶)를 찾아 그날의 야영지가 정해지면 재빨리 텐트를 치고 곰의 침입에 대비해 썰매 다섯대를 텐트 주위에 빙 둘러 배치한다.버너는 취사용일뿐아니라 난방.건조용으로 다목적 기능을 발휘한다.좁은 텐트 안이 버너 두 대의 열기로 금세 훈훈해지면서 위쪽에 걸어놓은 의복과 양말에서 얼음이 녹아 흘러내린다.한평 남짓의 손바닥만한 텐트속에 1인당 다섯켤레씩 모두 50개의 양말과 상하의 다섯벌 이상이 주렁주렁 걸린다.장정 다섯명이 그 안에서 흡사 수인들 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인다.우리는북극에 갇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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