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새내기] “얼굴 알리기 하루 48시간쯤 됐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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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상록갑에 첫 출사표를 던진 통일민주당 전해철 후보(사진<左>)와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가 30일 안산공대 운동장을 찾아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선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행위다. 유권자들과의 악수에서 당락을 점친다는 다선 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생면부지인 사람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 신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이들에게 공식 선거운동 기간 13일은 너무 짧다. 마음 같아선 하루가 48시간쯤 됐으면 싶다. 신인들이 살아남는 길은 발품뿐이다. 그래서 더욱 고달프다. 안산 상록갑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도전한 전해철 (통합민주당)·이화수 (한나라당) 후보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민주당 전해철 후보
약봉지·목캔디는 필수품
내민 손 거절당할 땐 민망

차에 오르자마자 약부터 찾았다. 많은 사람 앞에서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는 그는 잠깐만 유세를 해도 목소리가 갈라진다고 했다. 목 캔디·보리차·알약·오미자차·허브차…. 승용차 안에 목에 좋다는 건 다 있었다.

일요일인 30일 오전 7시 집을 나선 전해철(45) 후보는 명함통을 들고 상록수역에 도착했다. 휙휙 스쳐가는 시민들에게 70도 이상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십니까~. 전해철입니다”를 외쳤다.

민주당 공천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주민들과 만날 시간이 부족한 그에겐 1분 1초가 아쉽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명함을 돌리는 것밖에 없다.

전 후보는 “선거운동을 시작한 뒤로 아내(장성희·42)와 둘이 ‘앞으론 길에서 나눠 주는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 말고 꼭 받자’고 결심했다”며 웃었다. 막상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보니 명함을 받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이날도 오후 1시쯤 꿈의 교회 앞에서 예배를 끝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던 그는 50대 남성이 명함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치자 얼굴이 빨개진 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잠시, 그의 손은 다시 다음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인근 반월동 남산뜰 체육공원에선 한나라당 지지자에게 일격을 당했다. 동료들을 기다리던 장모(56)씨가 대뜸 “왜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기호 1번이냐”고 따졌다.

그는 잠깐 동안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질척해진 길을 누벼 금세 흙투성이가 돼 버린 신발을 뒤 트렁크 안에 있는 새것으로 갈아 신고는 운동원들과 쉴 새 없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29일 밤 10시30분. 안산시 본오1동 자율방범대에 들른 그에게 방범대원 정기용(46)씨가 “장경수 의원님은 참 자주 오셨는데…, 얼굴을 안 비치시더라”는 말을 불쑥 던졌다. 전 후보의 얼굴이 굳어졌다. 민주당 여론조사 경선에서 장 의원 측이 규칙을 위반해 후보가 된 그는 한나라당도 한나라당이지만 같은 당에 있던 장 의원의 지지자들과 만나면 더 곤혹스럽다.

이렇게 힘든 선거에 왜 나섰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그는 “지난 정권의 정책은 옳았지만 국민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며 “국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이 재미있느냐”고 묻자 “아니요,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한나라당과 정부 때문에 화가 난다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 전화가 늘어 힘이 된다”고 했다.

글=선승혜 기자



한나라 이화수 후보
연고 없는 지역 발품 승부
면전서 명함 버릴 땐 서운

55세의 나이에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뛰어든 그의 입술은 군데군데 부르터 있었다.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의장인 그는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하다 안산 상록갑에 출마했다.

토요일인 29일 오후 8시. 이 후보는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 있는 식당 ‘웰빙촌’에 들어섰다. 명함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지역에 연고가 없다. 그래서 유권자 한 명의 손이라도 더 잡는 게 최선의 얼굴 알리기 방법이다.

마침 한 유권자 가족의 생일파티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10명은 돼 보였다. “기호 2번 이화수입니다”라며 재빠르게 자리에 끼어들었다. 가족들의 표정이 뚱했다. 그가 직접 생일케이크에 초를 꽂고 컵에 물을 따르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시간이 좀 흐르자 가족들도 익숙해진 듯 “열심히 하라”고 했다.

옆 테이블로 옮겼다. 대뜸 핀잔이 날아 왔다. 한 50대 남성 유권자가 “정치인들은 지역 현안 사업을 약속해 놓고 해 주는 걸 못 봤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이날 밤 12시까지 이 식당 저 술집을 누비고 다니던 이 후보가 집에 들어가며 씁쓸하게 한마디했다.

“내가 원래 술을 좋아해요. 그런데 보좌관들이 유권자들이 주는 것도 못 받아 마시게 하네요. 다음날 힘들다고….”

이 후보는 정몽준 최고위원에게 지원 유세를 신청해 놓았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답이 없다.

일요일인 30일 그의 일정표는 이랬다. 오전 7시 집에서 출발-8시20분 교회 예배-9시30분 목사와 대화-10시30분 사할린 영주 귀국 동포 사업소 방문-11시 본오동 상록수 명륜교회 예배-낮 12시40분 상록중학교 조기축구회 방문-오후 1시10분 배드민턴 대회장 방문…. 숨이 찰 정도로 빡빡했다.

“할만 하느냐”고 묻자 긴 대답이 돌아왔다.

“선거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노총) 대의원 선거와 달라 힘이 든다. 한국노총에선 솔직히 몇 번 술만 마시면 됐다. 여기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해야 하니까 힘들다 .”

-왜 출마했는가.

“노동계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나섰다. 노동자가 많은 이곳(안산)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해 보니 너무 힘들다.”

이 후보는 명함 때문에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날 명륜교회(오전 11시)에서 신도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올 때였다. 그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누가 버린 자신의 명함을 주웠다.

“안 받거나 무시하는 건 괜찮은데, 한나라당이라고 욕하거나 면전에서 명함을 찢어 버리는 데는 울화가 치민다”.  

글=이정봉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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