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말로만 머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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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라고 요즘 이명박 대통령이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50년 전 자유당 시절 내가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말이다. 아마 이 대통령도 초등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공무원에는 물론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포함된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말할 수 없이 부패하고 무능했으나 그래도 민주주의 교육 하나는 확실히 했던 덕에,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그 후 우리 국민들이 독재정권을 셋이나 무너뜨리고 민주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오랜 군사독재 시절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국민의 하늘이었고, 국민은 공무원의 밥이었다. 그 후 두 김씨 대통령도 권위의식이 대단해 여전히 머슴이 아니라 나라님이었고, 전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청산했으나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국민의 지도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말하기는 쉽고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이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머슴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려는 경우가 있다. 한반도 대운하가 그런 경우다.

총선 전에 대통령 측근들은 대선 승리로 대운하는 국민들의 승인을 받았다고 강변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것은 대운하가 아니라 정권교체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아전인수이자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존경받던 어떤 목사는,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대운하를 건설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에도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권력도 술처럼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원래 대운하는 대통령 후보가 내세울 구호가 못 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시대정신과 비전을 제시해야지 어떻게 토목공사를 첫째 구호로 내세울 수 있는가? 취임식에서 선진국 원년을 선포한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후진국적 발상을 할 수 있는가?

자연파괴형 경제개발은 후진국들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도 과거 후진국 시절에 돈이 아쉬워 산천을 많이 파괴했다. 우이동의 아름다운 바위들이 쪼개져 수출됐으며, 자유당 시절 대통령 유세에 100만 명이 모였던 드넓은 한강 백사장은 간데없고, 생명이 넘치고 아름다웠던 광활한 개펄들도 간척으로 수없이 사라졌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과학발전에 도취한 나머지,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된다’고 말했다. 망발이다. 태어난 것도, 살아가는 것도 모두 자연 덕분인 우리가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라니. 자식이 부모의 주인이자 소유자라고 말하는 꼴이다.

인간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마구잡이로 자연을 파괴하고 수많은 동식물을 아무런 의식 없이 멸종시켜 왔다. 홍수, 해일, 태풍, 물 부족, 대기 오염, 황사 등이 점차 빈번해지고 커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지구라는 작고 아름다운 별은 우주라는 망망대해 위에서 우리가 타고 가는 일엽편주다. 자연개발은 우리 목숨을 유지해주는 소중한 이 작은 배를 파손하는 자해행위다. 소중한 다른 생명과 자연을 마음대로 죽이고 부수면서 어찌 문명과 평화를 운운할 수 있는가?

우리 선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은 경외와 순응의 대상이지 개발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개발에서 자연보존으로 생각을 바꾼 ‘지속 가능한 성장’이 세계적 공감을 얻은 지 오래이며, 선진국들이 이를 실천한 지 수십 년이다. 청계천을 복원했던 분이 단군 이래 최대의 자연파괴가 될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니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얻으면 특별법을 만들어 대통령 임기 내 완료를 목표로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국토해양부 내부보고서가 며칠 전 보도됐다. 한번 그래 보라. 독재정권을 셋이나 무너뜨린 우리 국민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제대로 하려면 10년이 넘게 걸리고 현행법으로도 3∼4년이 걸릴 환경영향 평가를 1년 만에 엉터리로 해치우려는 것이 선진국 원년에 할 짓인가? 대운하가 소신이라면 당당하게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으라. 대통령은 말로만 국민의 머슴이라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국민들도 대운하 반대를 총선에서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경실련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