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유로의 달러 따라잡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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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34면

유로화가 과연 달러화를 제치고 세계 제일의 준비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일까.

유로화는 1999년 달러화와 거의 1대1로 대등하게 출범했다. 지금은 1유로에 1.57달러 선으로, 9년 새 50% 이상이 올랐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공식 외화 준비 자산의 구성을 보면 2007년 말 현재 달러화가 64.6%, 유로화는 25.8% 수준이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유로화의 유통량은 실제 금액으로 따져 달러화를 이미 넘어섰다. 유로화 유통량은 2006년 10월 말 현재 6100억 유로로 당시 환율로 8100억 달러에 상당해 미국 달러화 유통량 759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도했다. 게다가 국제사회가 달러 자산을 갈수록 기피하고 심지어 범죄 영화에서 범인들이
노리는 돈다발도 왕년의 100달러 지폐에서 500유로 지폐 다발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영국 파운드화가 미국 달러화에 밀려나는 과정이 그랬듯이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 바꿈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미국이 영국을 경제 규모에서 능가한 것은 1872년, 수출 규모는 1915년, 순 채권국이 된 것은 1917년이었지만 달러화가 파운드화를 제친 것은 45년 이후였다. 저명한 국제경제학자 제프리 프랜클(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은 이런 시간 지연 때문에 유로화가 2022년까지는 달러화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3년 전 예측했었다.

그러나 달러 가치의 지속적 하락으로 이르면 2015년에 유로화가 달러화를 능가할 것이라고 최근 예측을 수정했다. 영국이 비록 유로화 사용국은 아니지만 런던이 유로화의 금융 수도로 프랑크푸르트 역할을 대신하며 유로 금융시장의 깊이를 더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화는 현재 유럽연합(EU) 15개국과 EU 바깥 5개 국가 및 지역의 공식 통화인 데다 23개 국가 및 지역 통화들이 유로화에 가치가 고정돼 있다. 왕년에 기세 좋던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가 달러화를 제치지 못한 것은 경제 규모에서 미국에 적수가 못된 데다 금융시장도 덜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유로랜드’는 이제 경제 규모에서 미국과 대등하고 가치 저장 수단으로 유로화가 달러화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10년 내 원유 대금의 유로화 결제 가능성도 언급했다.

‘달러제국’은 10년 내 몰락할 것인가. 막대한 적자에도 ‘제국’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일본·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맹방들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금융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이었다. 국제사회의 신뢰와 헤게모니를 잃은 미국의 추락을 로마제국의 멸망에, 그리고 월스트리트를 부와 물질적 탐욕의 상징 콜로세움에 견주는 자학적 비관론도 있다.

반면 미국이 세계 GDP의 27%를 점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경제가 회복되고 금융 불안이 가라앉으면 이 모든 우려가 불식되리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존 스노 전 재무장관은 “달러시장이 너무 깊고 유동성이 넘치는 데다 미국경제가 근본적으로 대단히 선진화돼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유럽 화폐통합 이론가 폴 드 그라위(벨기에 루뱅대 교수)는 유로와 위안 등으로 다극통화체제 시대가 열리겠지만 유로화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글로벌 리더십과 정치력의 뒷받침이 필수적인데 ‘유로 정부’ 없는 사무관료집단(Eurocrats)에 주도되는 EU에 미국의 대타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유로화가 달러화를 따라잡고 대등하게 행세는 하겠지만 대체는 ‘글쎄’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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