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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미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호 19면

일러스트 강일구

지난해 이맘때쯤 ‘돌아온 여배우’들이 눈길을 모았다. 고현정·강수연·최진실·김희애 등이 잇따라 주연을 맡으면서였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내 입장에선 ‘다시 돌아와 화면 속에 선’ 모습이 100%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들의 ‘동안(童顔)’에 쏟아진 찬사는 여자는 그저 젊음과 아름다움이 있어야 함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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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의 모습도 자신의 나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젊은 남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 되거나, 엄청나게 섹시해 친구의 남편을 빼앗을 정도는 되는 악녀이거나, 그게 아니면 빼앗긴 남편 때문에 눈물 짓는 조강지처이거나, 그중 하나였다. 이 나이 때의 평범한 여자 시청자들이 동일시하기에는 그들은 지나치게 젊거나, 화려하고 독하거나, 혹은 우중충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난 지금 40대 여배우들을 다루는 드라마의 시선에는 짧은 시간 사이에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나 ‘천하일색 박정금’에 등장하는 최진실과 배종옥을 보시라. 이들은 당당한 연애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애 딸린 아줌마들의 연애’ 하면 떠올릴 느끼함이나 구질구질함 없이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발랄하다.

거기에 상대도 톱스타에 변호사에 의사인 싱글남들이다. 갑자기 현실 속의 아줌마들이 그런 남자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할 만한 매력이 생겨난 건 아니겠지만 어쨌건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멜로 라인은 보는 아줌마들을 우쭐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래, 아줌마들도 이런 멋진 남자들이랑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단 말이야.

아니, 그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아줌마를 넘어 두 드라마에서는 아줌마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살려냄으로써 아줌마의 위상을 성큼 업그레이드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다른 사람의 슬픔을 껴안는 배종옥의 모성애에 푹 빠져버린 김민종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나눈 첫사랑의 아련함 때문에 최진실과 가까워지는 정준호나, 옛날의 코흘리개가 이제 멋지게 변해버렸음을 증명하고 싶은 손창민의 사랑을 보면 젊은 아가씨들에게 없는 매력을 아줌마들이 가졌음을 느낄 수 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으로 아줌마들을 취급하는 세상 일반의 시선에 비하면 아직 그 속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 드라마들이 요즘 얼마나 아줌마들을 설레게 하는지.

이들이 드라마 속에서 나누는 추억만큼이나 시청자 역시 배우들과의 추억을 덧대 가며 드라마 속으로 빠져든다. 요정처럼 등장했고 화려하게 결혼했다 돌아오면서 비호감의 강을 넘어 다시 마침맞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최진실은, ‘목욕탕 집 남자들’의 발랄한 노처녀에 ‘거짓말’의 가슴 아픈 연인을 거쳐 ‘내 남자의 여자’에서 고통을 겪었던 배종옥은 모두 자기 스스로를 연기하면서 그들과 함께했던 우리들의 추억을 불러낸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예쁜 젊은 여배우라도 줄 수 없는 아우라다.


이윤정씨는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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