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이 ‘카디건’을 입기 시작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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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36면

남자라면 옷장에 카디건 하나쯤은 있을 거다. 흔히 ‘여유로움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 아이템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탄생했다. 크림전쟁이 한창이던 1854년, 영국 백작 하나가 피비린내와는 어울리지 않게 늘 화려한 울 망토를 걸치고 출전했다.

이런 스토리의 결말이 그렇듯 그는 개선장군으로 귀환했고 망토 역시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 백작의 이름이 바로 카디건이다. 물론 그때의 카디건과 지금의 카디건은 모양이 다르다. 당시엔 소매가 없는 양모 조끼 모두를 총칭하는 이름이었다. 지금의 카디건이 보편화된 건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히긴수 교수가 입은 이후의 일이다.

얼마 전 읽은 외신에 따르면 이 카디건이 해묵은 오해의 시선을 벗고 인기인 모양이다. 데이비드 베컴과 주드 로, 대니얼 크레이그, 휴 댄시 같은 일급 스타들이 공식적인 자리에 울 카디건을 입고 나타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챙기고 있다는 것. 돌려 말하면, 연구실 반경 1㎞를 벗어나지 않는 노교수의 일상복쯤으로 여겨지던 이 진부한 아이템에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사실 카디건의 유용함은 강조하려야 입만 아플 정도다. 남자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이만한 게 없으며, 나이를 불문하고 자유로운 매치가 가능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카디건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이건 음모론에 가깝지만, 1970~80년대 TV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보이는 카디건은 늘 청평 별장에서 ‘수상한 놀이’를 하는 남자들의 아이템이었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느끼하고 천박한 느낌이 강했다. 대학교수나 박사들의 유니폼으로 등장할 때는 고루하고 나이 든 느낌에 진부한 단색 컬러가 문제였다. 예전보다 카디건 입은 남자를 보기 어려워진 건 어쩌면 이런 나쁜 학습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최상의 간절기 아이템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물론 낡은 문법은 사절이다. 밋밋하고 무난한 단색 카디건은 잠옷으로나 입는 게 낫다. 기왕이면 부위별로 다양한 색깔인 것, 디테일이 독특한 것, 노랑 혹은 빨강 같은 원색의 카디건은 어떨까.

어차피 카디건은 단독으로 입는 아이템이 아니어서 셔츠나 타이를 고를 때 일제고사 치르는 만큼의 고민이 필요하다. 컬러풀하고 디테일이 독특한 카디건은 ‘사지선다’의 난이도를 손쉬운 단답식 수준으로 내려준다. 화이트 셔츠 하나만으로도 ‘간지’가 살아난다는 얘기다. 참, 맨 위나 아래 단추 중 하나는 반드시 풀어둘 것.
사진 루엘


글쓴이 문일완씨는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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