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5.주부 월차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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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3백65일 휴일없는 근무,이른 새벽.늦은 밤 구별없는 불규칙한 근무시간,수당없는 야근.특근…」.
본격적인 산업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장 굴뚝이 연기로 가득찼던60~70년대 최장노동시간과 최저임금에 허덕이던 생산직 근로자의 얘기가 아니다.
하루종일 집안청소하랴,아이 돌보랴,식사준비하랴 쉴틈없는 전업주부들의 가사노동 현장의 모습이다.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가사노동.
하지만 가정을 도맡고 있는 전업주부로서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의 연속과 사회와 동떨어진 채 집안에만 갇혀있다는 피해의식속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실.
바로 이런 위기감속에서 전업주부들 사이에 최소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족들과 가사노동의 의미를 공유키위해 집안일에서 하루 해방,「월차휴가」를 즐기는 새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주부 공은숙(孔銀淑.30.성남시분당구수내동)씨는 매달 셋째 또는 넷째 일요일마다 휴가를 즐긴다.이날은 네살과 두살배기 두딸을 남편(33)에게 맡기고 오전10시쯤부터 저녁늦게까지 친구들을 만나 각종 공연.전시장을 찾거나 취미인 가구 만들기를 즐긴다. 이날 밥짓기와 청소하기,아이들 돌보기는 물론 남편의 몫이다. 『하루종일 아이들 보살펴야죠,청소나 빨랫거리는 왜 그리많은지….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더군요.그래서생각끝에 남편에게 정식으로 「월차휴가」를 통보했어요.』 물론 남편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가 뒷받침되면서 孔씨는 힘든 가사노동의 부담속에서도 여유를 찾는 슬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단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강도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더라도 임금을 받는 취업노동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이미 상당수위에 올라있다.
서울대 이기영(李基榮.47.소비자아동학)교수에 따르면 우리 나라 전업주부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평균 7.9시간.반면 우리나라 제조업체 생산직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지난해 주당 51.4시간,사무직은 45.1시간으로 보고돼 있다.이는 하루 평균(일요일 제외) 8.6시간(생산직근로자)과 7.5시간(사무직근로자)꼴로 가사노동 시간과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주부 文모(39.서울노원구상계동)씨는 아예 매일 오후9시이후에는 퇴근(?)하는 엄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루종일 일만 해서는 쓰러진다』며 오후9시이후에는 집안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 시간 이후부터밥차리고 간식준비하는등의 일은 남편과 아이들 몫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안 일을 하면서부터 가사노동이 결코 경제적으로 무가치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소득』이라는게 文씨의 설명.
李교수는 『주부들에게는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생산적 여가의기회를 제공하고,남편과 아이들에게는 아내(엄마)가 흘리는 땀의소중함을 깨우쳐준다는 점에서 주부휴가제는 모든 주부들에게 권할만하다』고 말했다.
〈金鍾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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