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밀란 쿤데라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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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랑』은 7년전에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그때 나는이 소설을 읽었지만 새로운 번역본의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새롭게 읽고나서 또 한번을 더 읽어버렸으니 도합 세번을 읽은 셈이 되었다.쿤데라는 어디에선가 『마치 우리가 훌 륭한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 들을 수 있듯 훌륭한 소설 역시 반복해 읽히도록만들어진 것이다』고 쓴바 있는데,순순히 거기에 동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이의가 생기는 까닭은 훌륭한 소설은 훌륭한 음악처럼 반복해 읽히는 것이라고 했 을 때,소설이 전범으로 삼아야 될 훌륭한 음악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의문에서다.그것을 알기만 하면 작가 지망생들은 당장 소설을 써낼 수 있고,독자들의 감식안도 상당히 향상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를 잘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과 소설의 미학적 역사에 대한 긴 주석이나 다름없는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통해 그는 반주(하모니)와 악상(멜로디)이 공존하는 바흐와 비발디 등 전반기 고전주의자들의 다성음악을 격찬하고,모차르트나 쇼팽과 같이 기계적이고 감상적인 멜로디 우위의 후반기 고전주의자들을 비난한다.매우 표현적이고 집약된, 따라서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즉각적 감동을 야기할 수 있는 멜로디스트에 대한 경멸이 소설관에 일관되게 적용될 때 그는 철학적 성찰(에세이)과 자유분방한 일화(스토리)가 부단히 이웃살이하는 라블레.디드로 등의 옛 소설 거장들을 옹호하는 반면 사실임직한 이야기만을 단선적으로 나열하는 스토리텔러들의 쉽게 읽히는 소설을 배격한다.
7편의 연애담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바로 그런 소설이다.여기에 등장하는 숱한 연인들과 그들이 겪어야 하는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작가는 뛰어난 철학적 성찰과 종횡무진하는 이야기꾼의 솜씨로 흩어진 구슬같이 자유분방한 사랑 이야기를 한 줄에 꿰어건다.이 소설에 넘쳐나는 거짓말과 농담,즉흥적이거나 암묵적인 유희,그리고 대책없이 저질러지는 성애는 체코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조롱과 저항의 의미를 띠고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체주의를 향한 무기일뿐 아니라 인간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위협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에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명작을 다시 읽고 꼼꼼한독후감을 쓴 오에 겐자부로는 재독행위로부터 우선 반가운 곳으로돌아간다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그 기쁨에 비하면 오래 전에 읽었던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어쩌면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좋은 소설을 반복해 읽는 좋은 습관에 따라붙는 부가가치가 이만저만한게 아니다.그 중에 허섭스레기를 읽느라고 시간을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가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 은 특기할만 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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