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총선 때맞춰 “시간지났다, 나가라” 매시간 재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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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불빛을 뒤로 하고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요원 11명이 27일 오전 1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철수했다. 심야의 어둠만큼이나 남북 관계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4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표단이 탄 차량 행렬이 개성공단을 지나 경기도 문산 남방한계선 통문으로 향하는 장면. [중앙 포토]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남측 인원 11명이 북한의 요구로 27일 철수한 시간은 0시55분. 남측 당국자들이 야밤에 사무소를 빠져나와 25인승 미니버스와 승용차 두 대 등 차량 세 대에 나눠 타고는 군사분계선을 건너온 것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이 처음 철수를 요구했던 시점은 24일 오전 10시였다. 당시 사무소의 북측 이인호 소장과 남측 김웅희 소장이 월요 주례회의로 만난 자리였다. 북측 이 소장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19일 ‘선 북핵 문제 타결, 후 개성공단 확대’ 발언을 문제 삼으며 3일 이내 남측 당국자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는 ‘상부의 지침’이라고만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소장은 이를 거부했고, 상황을 통일부에 알렸다. 통일부는 곧바로 청와대에 북측의 움직임을 보고했다고 한다.

그 뒤 통일부는 북측의 진의 파악을 위해 ‘문서를 통한 통보’를 요구했다. 북한 어느 기구의, 누가 이런 주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측의 태도나 분위기로 봐선 그렇게 심각한 요구가 아니었다”고 통일부 관계자는 밝혔다. 북한의 압박 강도가 갑자기 세진 건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를 마친 26일 오후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때부터 남북경협협의사무소의 북측 직원이 한 시간 간격으로 김 소장을 찾아와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며 “개성공단의 입·출경 마감 시간인 오후 5시를 넘기자 ‘철수 시간에서 몇 시간이 지났다’는 식으로 집요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날 저녁 상황이 심각해지자 홍양호 차관과 김중태 교류협력국장이 긴급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개성공단의 김 소장은 결국 26일 자정을 전후해 자체 회의를 열어 “더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27일 오전 1시쯤 철수와 함께 서울의 홍 차관에게 “불가피하게 철수한다”고 상황을 알렸다. 통일부는 “북한이 철수를 요구할 때 물리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며 상당히 정중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3일 내 철수를 요구하며 시한을 24일 오전 10시에서 72시간이 지난 27일 오전 10시가 아니라 개성공단 입·출경 마감 시간인 26일 오후 5시로 간주했다. 공교롭게도 남측 당국자들이 철수한 27일은 18대 총선의 선거운동이 공식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 0시부터 선거운동이 허용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이 총선에서 남북 관계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선거운동 시작에 맞춰 26일 끈질기게 철수를 요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이번 압박 조치에는 총선에서 남북 관계의 긴장을 부각해 이를 이슈로 만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포함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28일 예정됐던 하나원 방문을 취소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북 관계의 현안이 있는 만큼 외부 일정보다 현안 대처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남북의 경협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2005년 10월 개성에 문을 연 남북 당국 간의 첫 상설 기구. 지난해 12월 21일 남측의 지원으로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독립 청사를 신축해 북측 요원과 남측 요원이 함께 입주했다. 남측에선 통일부·지식경제부 등 정부 요원 11명과 KOTRA·무역협회 등 관련 단체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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