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범행 … 배후는 없는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앞 골목에서 경찰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정면의 기와집이 숨진 김재학씨의 자택이다. [사진=황선윤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보존회장 김재학(81)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북 구미경찰서는 27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우발적 단독 범행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배후나 정치적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용의자 강모(27)씨는 이날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강씨의 ‘이상행동’에 사건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범행 동기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범행 재구성=강씨는 26일 0시쯤 생가를 찾았으나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강씨는 구미 시내를 돌아다니고 금오산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등 시간을 보낸 뒤 오후 4시38분쯤 다시 생가에 들러 주변 쓰레기를 줍고 비질을 하는 등 청소를 했다. 오후 5시40분쯤에는 “옷이 더러워진다”며 상의를 벗어 놓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뒤 청소를 계속했다. 이를 본 피해자 김씨가 “문 닫을 시각이니 나가라”고 하자 강씨는 순간적으로 김씨를 넘어뜨려 살해했다. 강씨는 김씨를 살해한 뒤 10분 동안 김씨 옷을 벗겨 찢어 김씨를 묶고 자신도 벌거벗었다. 이를 본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했고, 1㎞가량 도주하던 김씨는 경찰에게 붙잡혔다. 숨진 김씨의 웃옷 주머니 양쪽에 있던 행정봉투와 지갑 두 개에는 수표와 현금 등 799만원이 있었으나 강씨는 손대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강씨의 이상행동=경북 예천이 고향인 강씨는 구미의 한 전문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상주에서 에어컨 수리기술을 배운 뒤 2월부터 구미 시내 에어컨설치업체에서 일해왔다. 미혼으로 시내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가족들은 “내성적이지만 정신적으로 이상한 걸 못 느꼈다”며 “정치에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은 못 된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강씨가 다닌 업체 사장 조모(39)씨와 직원은 “출근 첫날부터 강씨가 이상한 점을 보였다”고 말했다. 사무실 바닥을 청소한 뒤 사람 발자국이 생기면 다시 물걸레로 청소하는 등 유달리 청소에 집착했다는 것. 심지어 김씨를 살해한 뒤 손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묶어 놓기도 했다.

◇의문점은 없나=강씨가 사건 당일 0시 생가에 들렀다가 오후에 다시 들러 범행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5일 생가를 방문한 지 하루 뒤 범행이 일어났다는 점도 공교롭다. 강씨는 따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의도가 없는 것 같다’는 경찰 발표에 대해 “수사도 되기 전에 결론을 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이 의혹을 가지지 않게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미=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