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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백화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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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백화점(百貨店)은 대량 생산시대의 산물(産物)이다.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한 장소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을구매할 수 있도록 꾸민 백화점의 출현은 유통산업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백화점은 19세기 중반 구미(歐美)에서 시작됐다.1852년 파리에서 문을 연 봉마르셰를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꼽지만 이보다 4년전 미국 뉴욕에서 문을 연 마블 그라이구즈 패리스를 시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우리 백화점 역사는 19 06년 지금의 충무로1가에 들어선 일본 미쓰코시(三越)지점에서 시작되나 국내자본에 의한 본격적 의미의 백화점은 30년대 화신(和信)에서 비롯된다.
백화점은 도시적(都市的) 풍요를 상징한다.도심(都心)의 대규모 백화점들은 화려한 장식 속에 온갖 물건들과 다양한 먹거리,레저.스포츠시설,문화공간까지 배치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흡인력(吸引力)은 교통혼잡같은 일상적 문제와 함께 비상시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요즘 상영중인『다이하드 3』의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출현을 알리는 폭탄테러장소로 뉴욕의 한 백화점을 선택한다.사람이 밀집 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비상사태는 혼란과 불안을 극대화한다.
백화점들도 나름대로 이런 위험 요인에 대비한다.『X층에서 빨간색 옷을 입은 쌍둥이 엄마를 찾습니다.』『소방서에서 오신 총무본부장께서는 X층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이런 말들은 서울의백화점에서 내부적으로 화재발생을 알리는 암호들이다.
비 상사태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방송이나 고함을 질러 알릴 경우 생길 수 있는 더 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런 암호로 사고의 내용을 전달하고 준비된 계획에 따라 대피(待避)등을 결정한다. 엊그제 저녁 서울 도심의 삼풍(三豊)백화점이 일순에 무너져내렸다.천재지변(天災地變)도,폭탄테러도 아닌 부실공사에 의한참변(慘變)이었다.더욱 기가 막힌 것은 벽과 바닥에 금이 가고,긴급대책회의를 열고,마지막 순간에는 경영진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면서도 대다수의 직원이나 고객에게 이를 알리거나 대피시키기는커녕 버젓이 백화점문을 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안전수칙이나,비상시를 대비한 가상훈련이나 모두가 허울 뿐이었다는 얘기다.도대체 누구를,무엇을 믿을 수 있을지 모 르겠다.끝도 없이 터지는 인재(人災)속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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