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잃고 다시 걷습니다, 그래서 다시 삽니다.” - 철도역장 김행균씨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03년 영등포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어린이를 구하려다 자신의 다리를 잃어 일곱 번의 대 수술을 받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를 워크홀릭이 만나봤다.

Walkholic(이하 WH) 안녕하세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철도원’ 으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엄연히 ‘아름다운 역장님’이 되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행균 (이하 김) ‘아름다운 역장님’이라뇨. 부담스럽습니다. 저도 보통 일반 철도원으로 봐 주십시오. 2003년 7월에 사고가 있었고, 이후 11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왼발은 의족을 착용하고 오른발은 특수화를 신고 있죠. 병원에서 퇴원 후에는 바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수도권서부지사 소속 가산디지털단지역 역장으로 복직을 했습니다. 현재는 장기기증운동본부인 ‘사)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의 홍보대사를 맡으며 그 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셨던 사랑을 이제는 제가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홍보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2월에는 인천, 부천지역의 보육원 아동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자 전세열차로 정동진 해돋이를 보러가고 태백산 눈썰매장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걱정해주는 모든 사람들 덕분에 저의 건강상태는 양호합니다. 퇴원 후에는 별다른 치료 없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웃음)

WH 현재 양쪽 다리에 의족과 특수화를 신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걷고 생활하시는데 무리가 없으신지요?
왼발은 무릎 밑으로 의족이고 오른발도 발목이 절단이 됐으니 남의 발등으로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요즘 오른발에 피부이식한 부위에 상처가 생겨서 조금 고생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의족이랑 특수화 도움 받아가면서 현장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활동에 아무런 지장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사고 후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말렸죠. 다들 이렇게 불편한 다리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했던 거죠.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힘들어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그게 중요한 거죠. 다른 역장님들이 역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일을 저도 다 하고 있습니다. 시설물 관리부터 그 밖에 작은 일까지도. 불편한 점도 있긴 있죠. 출퇴근할 때 경인선 만원 전철에서 시달릴 때. 그래도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다행히 복직할 수 있게 됐고, 가장으로서 제 역할도 다 할 수 있고, 사고 전의 생활로 돌아왔잖아요.

WH 사고 후에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계신가요? 특별한 인연을 맺기도 하셨나요?
서해교전 때 부상당했던 이희완 대위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제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도 직접 찾아와 제게 희망을 전해 주신 분이죠. 그 인연으로 가끔 만나곤 합니다. 본인도 의족 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하는데 저한테까지 마음을 써주시니 고맙더라고요. 그 양반이 참 대단한 사람인 게, 목발을 짚고 마라톤 대회까지 출전할 정도로 열의가 엄청나요. 신체가 불편하다고 생각까지 불편해지면 그때부터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까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의족에 의존하지 않고는 걸어 다닐 수 없지만, 다른 부분은 멀쩡하잖아요. 팔, 다리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도 얼마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데요. 장애를 갖고도 훨씬 더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뵈면 제가 낙담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직장 동료들도 스스럼없이 대해주어서 제 다리가 아프다는 것을 못 느낄 정도예요. 고마운 일이죠.

WH 하루에 얼마나 운동을 하고 계신가요?
하루 평균 2~3시간씩 걷고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첫걸음마를 뗄 때 같다고 할까요. 꾸준히 걸음마 연습하고, 발 운동을 합니다. 정말 제대로 걷는 게 어떤 건지 몸으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철저하게 깨닫고 있지요. 그동안 가족들이 절 지켜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도 시간이 되는대로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일단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하는 게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제일 큰 보답이죠.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산에도 다닙니다.

WH 앞으로의 포부를 좀 밝혀 주세요.
포부라고 하니까 거창합니다만…. 제가 3월 10일자로 경인선 역곡역 역장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입니다. 그곳에 가더라도 열심히 생활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정유진 객원기자 yjin78@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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