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 美, 클린턴 탄핵안 어떻게 처리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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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도 1998년부터 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약 13개월 동안 대통령 탄핵 논란으로 큰 홍역을 겪었다.

◇탄핵의 사유=백악관 인턴 사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안에서 성행위를 가진 사실을 친구인 린다 트립에게 고백한 게 발단이었다. 린다 트립이 르윈스키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특별검사인 케네스 스타에게 전달했고, 이로써 속칭 '지퍼 게이트'가 터졌다.

◇하원의 절차=우선 98년 11월 19일 하원 청문회가 결성됐다. 이 청문회를 통해 과연 클린턴 대통령의 행위가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격론이 벌어졌다. 한달 뒤인 12월 19일 클린턴 탄핵안은 하원에서 과반수인 2백18표보다 10표가 많은 2백28표로 통과됐다.

당시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이긴 했지만 민주당 의원들 일부도 탄핵안에 찬성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당 단상을 점거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따위는 애초부터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의원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양식에 따라 탄핵투표에 참가하고,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찬성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원의 재판=99년 1월 14일부터는 상원에서 클린턴 탄핵안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상원에서의 결정이 최종이다. 보통은 상원의장인 부통령이 사회를 보지만 대통령이 탄핵대상인 경우는 대법원장이 진행한다.

상원은 1월 28일 정부 측에서 제출한 탄핵재판 기각동의안을 거부했다. 끝까지 재판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작 2월 12일 상원의원들이 표결에 들어갔을 때 결과는 딴판으로 나왔다. 당시 상원은 공화당이 55명으로 다수파였고, 민주당은 45명이었다.

그러나 하원 때와는 정반대로 공화당 상원의원 일부가 반대표결을 한 것이다. 탄핵의 첫번째 사유였던 위증죄에 대해선 공화당 상원의원 10명이 반대쪽에 가담해 찬성 45 반대 55로 부결됐다.

두번째 사유인 사법방해죄에 대해서도 공화당의 5명이 이탈, 찬성과 반대가 50대 50의 동수가 됐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상원의원 최소 67명이 찬성해야 한다.

◇사회통합=탄핵안이 부결된 뒤 클린턴은 사과성명을 냈다. 공화당은 클린턴의 도덕성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법절차에 따라,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이 양심에 기초해 한 표결이기 때문에 적어도 법적 문제에 대한 논란은 상원 표결이 끝나는 즉시 사라졌다.

◇탄핵의 역사=이에 앞서 74년에는 닉슨 대통령이 탄핵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대통령이 저지른 각종 범법행위가 폭로됐기 때문이다. 닉슨은 공화당 지도부로부터 "공화당 의원들도 탄핵에 찬성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스스로 사임했다. 닉슨은 욕을 많이 먹는 대통령이지만 적어도 그의 사임결정은 현명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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