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시집 "잘못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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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시인 강연호(33)씨가 제1회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하고 기념 시집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문학세계사)를 펴냈다.
현대시 동인상은 62년 결성된 「현대시」동인회(김종하.마종하.오탁번.이건청.정진규등)가 94년의 재결집을 기념해 제정했다. 현대시 동인은 현실의 모순을 밝히되 전통적 시작(詩作)으로서정의 맥을 이어온 그룹이다.
「내면 탐구」로 상징되는 현대시 동인들의 시세계에 어울리게 강씨의 시집에는 갇힌 자의 혹은 갇혀서 막막하게 열려있는 이 세상을 떠도는 자의 우울한 심사가 서정적으로 깔려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전망은 꼭 필요한 것이나 도무지 세상구조가 그렇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나는 과거의 흔적을 반추하는 셈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행복을 바라는게 아니라 행복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지나간 어느 한때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은 이제 가고 없습니다.그리움의 흔적 속에만 있지요.』 목청돋워 내일의 사랑과 진리를 약속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 각박하고,그러므로 진지한과거로의 답사가 더 진실된 삶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내 어느 날 문득 더 자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묵념처럼 세상은 함부로 권태로워지고/더 이상 간직할 슬픔 하나없이 늙어가는 동안/옛날에 나무에 스치며 나를 키우던바람소리/다시는 듣지 못했네 들을수 없었네」처럼 절망을 확인할지라도,그 절망이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공존」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게 시인의 믿음이다.그러므로 나이에 비해 일찍 늙어버린 듯한 그의 말과 시에는 전망 부재의오늘을 치유하고픈 소리없는 비명이 숨어있다.
「가슴에 화살 맞고 쓰러진 짐승의 더운 피를/내 혈관에 수혈하면 과연 열혈남아로 환생할 것인가/흐르는 강물이여/아니,지금막 흘러간 강물이여/세상의 변죽을 두드리다 지쳐 머리 싸매고/방금 네가 적시고 간 발끝을 내려다 본다/나는 아직도 같은 강물에 두번 발 담그고 싶다」.
이혜원의 평마처럼 『세상은 황량하고 운명은 가혹하고 시인은 나약하다.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상상은 운명의 폭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한 방법일 뿐이다.그는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견디는것만이 최선의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인 식하고 있다.
』 그러나 「같은 강물에 두번 발 담그고」황량한 세상을 어떻게견뎌야 할 것인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도대체 누구와 더불어 먼길을 가야할 것인가.
또다시 세상은 막막해진다.
李憲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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