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서 값 뛰는데 안에서 묶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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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생필품 52개 품목을 생산 또는 판매하는 업체들은 정부의 가격통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기업들은 “최근 물가상승의 주요인은 국제 원자재값 인상인데, 한 나라 안에서 품목을 정해 가격을 통제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생필품 가격 관련 정부 발표문에서 1년간 가격이 20% 올랐다고 지목된 밀가루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1년간 국제 곡물값이 20% 올랐어요. 할당관세를 내린다고 해도 국제시세가 오르면 제품 가격을 묶어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요.”

이미 가격경쟁이 치열해 마진이 박한데도 점검 대상 품목에 포함됐다고 불만을 토로한 곳도 있었다. 샴푸·세제를 생산하는 생활용품 업계의 관계자는 “세제는 가격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도 가격에 민감해 제조업계가 원가 인상요인을 최대한 흡수하는 업종”이라고 말했다. “샴푸의 경우 화장품과 비슷하게 브랜드 파워가 가격을 결정하는 큰 요소인데, 정부가 가격을 관리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는 말도 했다.

유아용품 업계는 ‘유아용품’이 포함된 배경을 궁금해했다. 한 회사 관계자는 “유아용품은 품질이나 브랜드·디자인에 따라 가격차가 커 일괄적인 기준으로 가격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류업계는 ‘바지’가 생필품 목록에 포함된 것을 뒤늦게 알고 상황 파악에 분주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정장 바지부터 등산복까지 제품이 무척 다양한데, 어떤 걸 기준으로 삼아 관리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추·무 등 농산물의 가격통제도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농수산물 유통업체 관계자는 “배추나 무는 수입 물량이 없고, 비축물량도 적어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많이 움직인다. 하루 새 경매가가 10% 왔다갔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원가 상승분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는지 소비자단체를 통해 감시하겠다고 했는데, 정부나 소비자단체가 제조업체의 원가를 분석할 수 있는 자료와 능력을 갖췄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박현영·문병주·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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