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지지 얻으려면 국민과 늘 소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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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나카 헤이조 전 일본 경제재정장관은 24일 고이즈미 정권의 공공개혁을 정리한 저서 '구조개혁의 진실' 한국어판을 냈다. [사진=김성룡 기자]

일본은 2001~2005년의 고이즈미 정권이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기치 아래 공공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컬어지는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재정·금융장관 등으로 개혁을 주도해, ‘다케나카가 없었다면 고이즈미 개혁도 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일본 게이오대 교수.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김종석)이 24일 주최한 ‘일본 공공개혁의 경험과 시사점’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그에게서 일본 공공개혁의 경험이 4월 총선을 앞둔 우리에게 던져 주는 시사점을 들어봤다.

-고이즈미 개혁은 일본경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고이즈미 개혁은 ‘잃어버린 10년’ 불황을 극복하고 활기를 찾은 일본경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나.

“집권 5년 동안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늘 50%를 넘었다. 그 비결은 개혁에 관한 국민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에 있다. 한두 마디에 담은 명쾌한 개혁 메시지, TV 등 언론을 통한 대국민 개혁 호소 등 방식을 활용했다.”

-고이즈미 개혁은 관저 주도(총리가 주도하는 개혁 체제)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개혁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을 장악했다.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경제재정자문회의가 전략적으로 활용됐다. 정부 내에 각종 위원회가 있었지만, 이 자문회의만 총리가 직접 의장을 맡았다.”

-개혁의 주도 세력은.

“고이즈미 개혁은 방향 제시, 주요 개혁과제 설정 등에서 민간이 주도한 개혁이었다. 예를 들어 40% 이상의 민간인으로 자문회의를 구성토록 한 정부조직법을 활용해 민간위원들의 개혁 의지가 자문회의를 주도하도록 유도했다. 부문별 이해에서 자유롭지 않은 공무원에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혁을 의존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아닌 민간에 의한 개혁이 공공개혁 성공의 요체였다.”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인 ‘철의 삼각’을 어떻게 와해시킬 수 있었나. (철의 삼각=이권을 둘러싼 업계, 정치권, 행정관료 간의 끈끈한 이해관계)

“‘철의 삼각’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고이즈미 정권이 ‘철의 삼각’을 형성한 세력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과제와 그에 관한 논의 과정을 국민에게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은 기득권을 없애는 개혁 논의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것에 질색했다.”

-총리가 개혁을 주도하려면 정당 장악이 필수적일 텐데.

“고이즈미 총리는 장관 임명과 관련해 파벌과 아무런 상의를 거치지 않았다. 또 중의원을 해산시켰다. 국회 해산에 반대하는 장관은 파면조치했다. 개혁을 위해서는 총리에게 주어진 모든 헌법상 권한을 전략적으로 행사했다. 그것이 자민당을 장악한 주요 수단이자 개혁 성공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일본의 전통인데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 추진 방식은 그렇지 않았다.

“합의는 여전히 일본의 방식이지만, 2001년 전후에 일본은 국가위기 의식이 팽배했던 때다. 일본 국민이 새롭고 강한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 후의 개혁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쉽게도 아베나 후쿠다 정권 아래서 개혁의 모멘텀이 줄어드는 것 같다. ‘전략적 과제 설정(strategic agenda setting)’에 실패해서다.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개혁과제를 설정해야 개혁에 국민의 관심이 모이고, 그래야 개혁에 대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아베나 후쿠다 정권에서는 개혁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잘 들리지 않는다.”

-4월 9일 총선을 앞둔 한국도 정책과제에 관한 논의가 실종된 상태다.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정책 논의를 싫어한다. 이들을 움직이려면 유권자들이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7-4-7’ 같은 슬로건이 있으면, 그 슬로건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무슨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 설정’이다. 일단 과제를 설정하고 나서, 이것을 정부가 채택하고 추진하게 하려면 유권자의 관심이 모여야 하는데, 여기에 ‘정책 마케팅(policy marketing)’의 역할이 있다.”

글=인터뷰=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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