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MB노믹스, 중심 잡고 타이밍 노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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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침체, 환율 상승, 원자재 가격 폭등, 미국의 경기 불안…. 경제 곳곳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언제 또 이랬나 싶다. 오리무중이다. 혼란스럽다 못해 날로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난관 극복의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언제 어느 정책을 써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어느 정책을 선택해도 나라 밖에서 닥쳐온 경기와 물가 불안을 피해갈 수 없고, 어느 정책이든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1. 경기를 받쳐주려면

금리를 내릴 수 있다. 미국 경기 침체에 의한 수출 감소와 그에 따른 국내 경기 하락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정부나 증시가 기대하는 바다. 금리를 내리면 단기에는 경기회복 기대감에 (미국처럼) 증시가 살아나는 듯이 보이고 경기 불안이 가실 수 있다. 그러나 미처 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물가부터 더 들썩거릴 것이다.

물가 불안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원화가치도 덩달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른 만큼 수입물가가 올라, 또 수입을 통한 공급이 줄어들어 물가 오름세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당초 금리 인하에서 기대하던 경기부양 효과가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된다.

미국 경기 침체만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면 금리 인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경기의 ‘반짝 호전’을 누리겠다고 물가 상승을 부추길 상황은 아니다. 이것이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정부의 은근한 금리 인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이유다.

2.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이때 전통적으로 동원되는 정책 수단이 금리 인상이다. 돈줄을 죄어 씀씀이를 힘들게 해 물가를 잡자는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원화가치가 올라 환율과 수입물가가 내려간다. 그 덕에 수입물량도 늘어난다. 국내 수요가 주는데 수입은 늘고 수입가격은 내려가니 물가가 하락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경기위축 효과 때문에 물가 상승이 예상될 정도로 호경기일 때 동원하는 수단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경기는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정도’의 호경기도 아니고, 물가 상승세도 아직은 금리를 ‘인상해야 할 정도’에 이르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을 걱정하면서도 금리 인상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가 불안이 극심할 때 정부가 쉽게 동원하는 것이 물가 통제다. 그러나 물가 통제는 당장은 통제 대상 상품의 가격 상승세를 주춤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서 보듯이 시장이 구조적으로 왜곡·위축되고, 언젠가 그 상품가격의 폭등을 예약해 놓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물가 통제는 위기적 상황이거나 민간 시장체제가 정착되지 못한 개발도상국에서나 동원되는 수단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위기도 아니고, 개도국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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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장·물가 ‘두 토끼’노리면

공급 확대책을 써야 한다. 그 일환으로 법인세 감축과 규제 완화를 통해 투자 활성화를 꾀한다. 법인세 감축으로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규제 개혁을 통해 투자를 늘리면, 공급 능력이 확충되고 그에 따라 비용도 전체 물가도 하락세를 보이게 된다. 물가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 된다.

또 다른 공급 확대 수단은 노동시장 유연화다. 고용뿐 아니라 근로 형태와 임금 등 노동시장 전반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 유연화는 한쪽으로는 고용을 늘리고 다른 쪽으로는 생산성을 높여 임금을 안정시키고 비용을 떨어뜨린다. 물가가 안정될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노동 유연화가 (물가 안정과 생산성 증가를 통한) 실질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을 들어 근로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노와 사 또는 노·사·정 사이에 경제 안정과 장기 회복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마련될 때 추진될 수 있는 정책이다.

개방도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더욱 폭넓게 수입자유화를 추진하거나 관세를 내려 외부로부터의 공급, 즉 수입을 늘리자는 것이다. 관련 시장은 더욱 경쟁적으로 변하고 공급도 늘어나니 물가 안정은 정해진 수순이 된다. 수입과 경쟁하는 부문의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도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 그래서 개방은 지금처럼 농산물의 국제 가격이 폭등해 국내 서민물가가 덩달아 튀어 오를 때 동원되는 정책 수단이다.

4. 수요관리 집중하는 이유는

대부분 정부가 공급 확대보다 수요 관리에 집착한다. 공급 확대 정책이 효과를 내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서다. 경기 침체나 물가 앙등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정책에만 매달렸다가는 ‘정부는 뭐하고 있나’ ‘정부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등의 비판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집권기간이 정해진 정부로서는 수요 관리 정책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물가와 경기 간의 상쇄관계를 고려할 때 수요 관리는 ‘단기에’ ‘수세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이에 비해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 때문에 공급 확대책은 ‘늘’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5. 당장 정책 동원할 때 아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정책 동원의 시기와 강도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때다. 관련해 다음 사항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첫째, 미국 경기의 향방과 우리 수출의 동향이다. 금리 인하 등으로 국내 경기를 받쳐줄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지켜봐야 할 사항이다. 만일 미국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그 영향으로 미국에 대한 우리의 수출이 확연히 줄어들고, 그것 때문에 한국마저 불경기로 돌아설 것으로 판단이 서면, 그때는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나름의 ‘오버슈팅’이 될 것이다.

둘째, 국제 원자재 가격과 우리 환율의 향방이다. 물가와 관련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원자재나 금에 투자했던 것을 (달러 등) 현금을 챙기고 빠져나갈 것인가를 두고 국제시장이 고민하고 있는 형국이다. 원유·곡물 등 원자재나 금값이 그동안 너무 또는 충분히 올랐다는 판단이 최근에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따라 달러 약세 기조가 어찌될지 국제 외환시장도 오락가락하는 판이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또 내리면 잠시 달러가 내려가겠지만, 달러가치에 대한 국제 외환시장의 고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환율도 마찬가지다. 경상수지 적자가 깊어지고, 한국증시를 빠져 나와 달러 등 외환으로 챙기려는 시도가 그동안 너무 과했다고 보는지(원화 환율이 너무 올랐는지), 그게 아닌지 시장 참여자들부터 확실한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확률은 낮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고, 달러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거기에 우리 원화가치마저 하락세를 면치 못한다면, 그래서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 상승이 확연해진다면, 그때는 금리 인상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인플레 심리(물가와 임금 간의 악순환 고리) 형성의 여부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 침체에 따른 소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물가냐 경기냐를 두고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국내 상황은 바로 인플레 심리다. 국제 원자재 가격 등 수입물가 상승을 빙자하고 너도나도 판매 가격을 올리고, 그래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핑계로 근로자들이 실질임금 보장을 내세워 물가 상승에 상응하는 임금 상승을 고집하면, 나라 경제나 정책 담당자로서는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어떻게든 물가 상승 심리가 준동하지 않도록 선제적 정책들을 펴야겠지만, 만일 인플레 기대심리가 심각해지거나 또는 소위 물가-임금 간의 악순환 고리가 일단 형성되면, 경기후퇴와 실업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바로 정부는 재정 긴축으로, 한국은행은 금융 긴축으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

김정수 경제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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