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한국현대사>28<니컬스회고록>下.부대원증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51년 美공군소속이었던 나는 한국의 니컬스부대로 전속돼 니컬스를 처음 만났다.
니컬스는 6.25전쟁 발발을 예견한 탁월성을 인정받아 전쟁기간중 맥아더사령부의 지원을 얻어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적진에뛰어들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던 적군의 미그-15기를 습득,공격을 위한 약점을 파악하기도 했으며 개전 초기 적군의 주요 화력이었던 T-34 탱크를 분해해 들고 오기도 했다.
그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을 도와 한국 공군을 창설하고 2대의 F-51機를 제공했다.니컬스는 한국 공군 창설 직후 어려운실정을 감안,자신이 직접 물자를 제공하고 월급을 주기도 했다.
그는 병사들의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빈탄통이나 비행기의 잔해를 주워오도록 했다.이러한 것들은 당시 고철로 팔렸다.이러한 니컬스의 태도에 감동한 李대통령은 그를 한국 공군 대령에 임명했다.
니컬스는 한국인들을 정말로 사랑했으며 그 자신 한국 여자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남겼다.또 한국에 주둔하는 동안 고아들을 위한 기금 모금을 돕기도 했다.
적군이 아들을 저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들은 니컬스는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는데 니컬스 자신도 오랫동안 적군의 암살명단에 들어 있었다.니컬스의 아들 도널드는 85년 비행정을 타고 가다 사고로 사망했다.
6.25전쟁 이후 헤어진 니컬스를 다시 만난 것은 굉장한 우연이었다.나는 집사람 도나와 함께 69년부터 플로리다의 브룩스빌에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20년쯤 지난 88년 어느날 일간신문에 난 니컬스의 사진을 보고 수소문한 끝에 이웃 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이후 나는 그의 법적 후견인이 돼 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92년6월 그의 임종을 지켜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