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스라엘 '나치처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 서정민 카이로 특파원

'쉰들러 리스트''피아니스트''안네의 일기' 등은 2차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들이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약 600만명이 희생된 유대인들의 아픔과 함께 인종차별주의의 극단적인 폐혜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이 영화들에는 예외없이 가슴이나 팔에 유대민족을 상징하는 노란색 '다윗의 별'을 커다랗게 단 유대인들의 모습이 등장했다. 유대인들은 유럽 각지에서 2000여년을 살면서 타민족과 피가 섞여 겉모습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나치는 모든 유대인이 이 표지를 달게 해 감시와 탄압을 쉽게 한 것이다. 이 표지는 유대인의 수난과 나치 광기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에서 비슷한 일이 재현됐다. 이번에는 유대인이 가해자고 팔레스타인인이 피해자다. 이스라엘 의회의 보안당국이 의회(크네세트)의 별관공사에 참여하는 노무자 가운데 팔레스타인인 25명에게만 헬멧에 빨간색 '×'표시를 강제로 달게 한 것이다.

이들 팔레스타인 노무자들은 4개월여에 걸친 신분조회를 끝내고도 이런 추가적인 '안전조치'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의원들과 언론이 들고 일어났다. 비극의 역사에서 도대체 뭘 배웠느냐는 비난까지 나왔다. 이 사건이 인권문제로 비화하자 당국은 부랴부랴 이 표시를 지우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는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국적을 지녔지만 주거.교육.취업 등에서 적지 않은 차별을 받는다. 이스라엘이 '유대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은 인종차별주의'라는 아랍 측의 비난을 더 이상 듣지 않으려면 눈앞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우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다.

서정민 카이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