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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이순신 동상 왜 옮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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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서울시는 세종로 시민광장 조성을 위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의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시민과 각계각층의 다양한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민족정기의 상징인 성웅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6년 발족된 애국선열 조상(彫像)위원회가 당시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고(故) 김세중 교수께 의뢰해 제작됐으며 68년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공공조각 또는 환경조각이 설치될 경우 먼저 그 주변의 환경을 고려해 세워지게 된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도 그러한 규범을 따르는데, 사찰을 지을 때 풍수지리에 근거해 터를 정하고, 그 점지(點址)된 장소에 탑을 세우며, 세워진 탑을 중심으로 대웅전을 짓고 사찰을 완성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당시 충무공 동상은 공공조각이 세워지기 위해 필히 요구되는 자연.환경.문화.장소를 고려, 북한산.경복궁.남대문.시청을 축으로 하는 동선과 주변경관 환경을 자문해 지금의 광화문 장소에 세워졌다. 따라서 동상 이전은 주변과의 조화를 담아낸 예술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 자리에서 30여년을 우뚝 서있으면서 이젠 단순한 장군상으로서의 위상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landmark)로 자리잡았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에 견줄 수 있는 상징적 조각으로 부각됐다 할 수 있다.

일제 강점 이후 한국전쟁과 어려웠던 시절의 국난 극복의 표상으로서 국민소득 100달러의 후진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더불어 국민소득 1만달러의 경제.사회.문화 발전의 상징으로 우리와 같이 존재해온 것이다. 21세기 경제.문화 전쟁의 시대를 맞아 충무공 동상은 앞으로도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고난을 극복하는 상징으로서 더더욱 그 존재가치가 커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의 위용을 배경으로 수많은 서울시민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마음이 되었고 우리의 역동적인 모습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상황처럼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길의 수호자'(Road Guardian) 역할을 했던 조각들처럼, 우리가 방황할 때 지켜주었던 성상들처럼, 우리가 어린 시절 잘못했을 때 우리의 어머니들께서 사랑이 담긴 그윽한 눈길로 꾸짖는 것처럼, 우리가 외롭고 좌절을 느낄 때 아버지의 가슴에 기대어 의지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충무공 동상으로부터 용서와 위안을, 열정과 용기를, 에너지와 도전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다시 힘을 합쳐야 한다. 남과 북, 노와 사, 보수와 진보, 그리고 세대 간의 모든 간극을 초극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바로 광화문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 계획은 우리의 역사에서 오늘 우리가 있게끔 만들어준 국난 극복의 상징을 파괴하는 것이고, 서울의 심장부에, 그리고 우리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자긍의 이미지를 위축시키는 행위다. 이러한 이전계획은 30여년간 우리 부모 세대의 피와 땀으로 바쳐진 헌신적 역사를 폄하.축소하며 부정하는 것이 아닐지 자문해 본다. 또한 수천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일 수 있다.

철거.이전 비용도 문제다.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시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없는 시민을 위한 광장 조성이 과연 얼마만큼 시민들의 축제의 장으로서 효율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철거.이전보다는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서, 민족정기의 상징으로 보존돼야 하며 광화문 앞에 중국 자금성의 오성기 게양대와 같은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든지, 아니면 시청광장에 광개토대왕 동상을 세워 서울,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 모여 다시 한번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장면을 가슴 설레게 기대해 본다.

신현중 조각가.서울대 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