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한국현대사>27<니컬스회고록>上.니컬스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국전쟁의 숨겨진 「영웅」으로 전해져 오는 도널드 니컬스(Donald Nichols).그에 대한 떠돌아다니는 전설은 많지만 구체적 활동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중 니컬스는 중국.미얀마.인도전선에서 활동했고,전쟁이 끝난후 괌의 B-29부대에 소속된 공군 31정비단의 수송책임자였다.1946년 19세의 니컬스 상사는 美방첩대(CIC)훈련학교의 특별교육과정을 수석 졸업했다.
그해 6월 그는 도쿄(東京)주재 극동공군사령부의 607CIC파견대 산하 「K분견대」특별요원으로 한국에 파견됐다.그의 임무는 육군.항공대의 요원과 시설에 대한 전복행위를 예방하는 것과비밀취급 허가가 필요한 미국인 및 한국인의 배후 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정보수집을 위해 남한 정계.군부의 여러 요인들과 밀접한관련을 맺었고,이들로부터 고급정보를 빼냈다.46년 가을부터 이승만(李承晩)대통령과 니컬스는 아주 가깝게 지냈다.니컬스는 李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49년9월2일 대한민국 공군창설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니컬스의 주특기는 인문정보(Humint:Human Intelligence)였다.특히 인맥과 스파이를 통해 수행된 남한 좌익세력과 북한측을 대상으로 한 정보활동이 백미(白眉)였다.그는좌익관련 정보수집을 위해 47년 이미 남로당에 스파이를 침투시켰고 월남하는 피난민.망명자를 신문해 정보를 수집했다.그는 정보수집을 위해 직접 북한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니컬스는 내무부 치안국 사찰과 고문 자격으로 치안국 중앙분실장 백형복(白亨福),남로당원 안영달(安永達)조용복(趙鏞福)등을조종해 남로당 서울지도부 책임자 김삼룡(金三龍)을 체포,남한 좌익세력의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니컬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자 북한도 니컬스의 존재를 눈치챘다.48년말이었다.이때부터 북한은 니컬스를 「천의 얼굴」이라 부르며 생포든,사살이든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니컬스는 공군과 육군,미국인과 한국인으로 혼성된 특수부대(美공군 제6006항공첩보부대)를 이끌며 한국전쟁에서 맹활약했다.
그는 정확한 정보망을 통해 6월25일 한국전쟁의 발발을 정확히예견했다.
니컬스는 57년11월 서울을 떠났고,얼마후 퇴역했다.은퇴후 플로리다에 은거하면서 자신의 회고록을 세심히 준비했다.
니컬스는 87년 이순희(李順熙)씨등 생사를 같이했던 부대원들의 초청으로 30년만에 서울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이후 니컬스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다 92년 플로리다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美극동 제5공군사령관 패트리지장군은 니컬스를 「전쟁의 달인」「정보의 천재」라고 평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