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술’ 필요한 軍의료시스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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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39면

군에서 장병들이 아프면 대대·연대·사단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대부분 회복되어 복귀한다. 그러나 위중한 경우에는 중간 단계 병원을 거쳐 국군수도병원에 후송된다.

필자는 예전에 우리나라와 미국의 군 의료체계를 직접 경험하고 비교해 볼 기회가 있었다. 1978년 육군 대위로 입대해 동해안 최북단의 88여단에서 의무중대장으로 1년간 근무했고 소령이 된 후엔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외과군의관으로 2년간 일했다. 또 85년부터 2년간은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연구소의 연구원 신분으로 미 해군병원에서 근무했다.

두 나라의 군 의료 수준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미 해군병원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이 대장암 수술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군 병원을 이용한다. 당연히 시설이 매우 좋으며 의료진 수준도 높다. 월터-리드 미 육군병원의 경우 전염병 관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우리 군은 세계 11위 경제 대국답게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됐다. 각종 무기체계는 첨단 전자장비를 탑재한 신무기로 대치되고 수천억~1조원의 함정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고가의 첨단 무기를 운용하는 군 장병들의 의료체계는 별로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이들이 아파서 드러눕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지난해 가을 한 총상 환자가 국군수도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왔다. 총상과 같은 외상은 군이 최고의 전문성을 가져야 할 분야다. 그런데 군 의료진의 대처 능력이 얼마나 부족했으면 총상 환자를 민간 병원으로 이송했던 것일까.

최근엔 한 병사가 항문의 치루를 치료받으러 부모와 함께 대장암 전문인 필자의 외래진료실을 방문했다. 군에서 의뢰하여 민간 병원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진료비를 군에서 내주지만, 이렇게 군인 자신이 원해 민간 의료기관을 찾았을 경우 건강보험 지급분을 제외한 나머지 진료비는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장병 월급이 얼마인가. 결국 가정형편이 어려운 군인은 의료 수준을 믿기 어려워도 군 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군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특히 2005년 군 제대 후 말기 위암 판정을 받고 3개월 만에 사망한 노충국씨 사건은 부실한 군 의료체계에 대해 일반 국민까지 분노케 했다. 당시 국립암센터 원장이던 필자는 국방부의 자문 요청으로 군 의료 개선안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방의료원-국방의학전문대학원-국방의학연구원으로 이루어진 특수법인 형태의 ‘국방의학원’ 설립이 필자가 생각한 대안이다. 무엇보다 단기 의무복무 군의관 위주로 운영되는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환자 진료-의료진 수련-임상 연구의 시스템이 있어야 의학이 발전하고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종합전문요양기관(3차 병원)은 모두 43개며, 국립의료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법인체로 운영되는 의과대학 관련 병원이다.

지난달 국방부와 서울대병원은 장병의 건강 증진을 위한 의료협약을 체결하였다. 또 국방부는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의사를 군 병원에 채용하기로 하였다. 우수 의사 영입을 위해서는 채용될 의사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 외에도 군인을 대상으로 한 군진의학(軍陣醫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면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미래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래서 더욱 국방의학원이 필요하다. 국방의학원은 평상시 군의 3차 병원 역할을 하고 국가 재난과 같은 대량 환자 발생 시엔 공공 의료기관들의 중심 기능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예상되는 군의관 인력 부족 현상에도 효과적인 대처 방안이 될 수 있다.

자문이 자문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현재의 군 의료 시스템을 조금 손질하는 것으로는 60만 장병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군 복무 중 건강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해주길 바란다. 군 의료수준을 국력에 걸맞게 획기적으로 향상해야 한다. 그리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부터 특수병원이 아닌, 우리 장병이 이용하는 군 의료시설을 이용하는 모범을 보여야 군 병원이 개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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