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겪고 2008 프로야구서 뛸 마해영·서재응·김선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호 26면

이탈리아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장고(Django)’가 개봉된 해는 1966년이다. 이후 ‘돌아온 장고(Django strikes again)’가 80년대 중반 극장을 찾았다. 돌아온 장고라는 제목은 이제 영화의 ‘옷’을 벗고 보통명사 비슷하게 사용된다. 기다렸던 영웅의 귀환, 또는 전성기를 누리다 사라진 뒤 불현듯 등장하는 인물들. 2008 프로야구가 29일 개막한다. 이번 시즌은 ‘돌아온 장고의 시즌’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유니폼을 벗을 뻔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의 영웅 마해영(38)이 고향 팀 롯데로 돌아왔다. 메이저리그로 떠났던 77년생 동갑내기 서재응과 김선우가 돌아와 각각 KIA와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에이스 노릇을 한 삼성 배영수(27)가 어깨 수술 뒤 재활을 끝냈다. 나열만 해도 벅차다. 야구팬이라면, 특히 ‘각본 없는 드라마 운운…’ 하는 스포츠의 본질을 믿는 팬이라면 충분히 흥분할 만한 이름들 아닌가.
 
마해영―고향 팀에서 쏟아진 박수

‘돌아온 장고’의 기관총은 언제 불을 뿜는가

마해영이 시범경기 내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부산 사직구장 팬들은 박수로 맞았다. 일부는 기립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2001년 이후 삼성으로 이적, 여러 구단(KIA-LG)을 돌고 돌아 ‘돌아온 연어’다.

배영수

지난겨울 마해영은 LG서 방출된 뒤 갈 곳이 없었다. 고향 팀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쉽지 않았다. 롯데 주전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8개 구단 중 가장 젊다. 마해영이 지난 몇 년간 보여준 것은 ‘1군 등록 뒤 2군행’의 반복. 롯데는 젊은 유망주 키우기에 힘을 쏟고 있다. ‘늙은 말’을 트랙에 세울 마주가 아니다. 그는 테스트를 택했다. 롯데의 김해 2군 구장을 찾아가 새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를 만났다. 외국인 감독은 마해영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니 미리 판단할 게 없었다. 그가 뛰는 걸 지켜보고 때려내는 걸 눈여겨봤다. 선입견 없는 외국인 감독의 부임이 마해영에겐 행운이었다.

그는 타격 폼을 수정하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발 간격, 즉 스트라이드를 다소 줄여 타격할 때 몸의 중심축을 안정시키고 있다. 그동안 지적받던 지나치게 넓은 스트라이드에 손을 댄 것이다.

“마해영과 양준혁의 다른 점이 뭔지 아는가? 양준혁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물론 마해영도 그랬겠지. 그런데 마해영은 변신을 시도하다가 다시 옛 폼, 옛 타격 스타일로 돌아갔다. 나이는 먹고 배트 스피드는 처지는데 계속 그걸 고집했다. 오늘날 양준혁과 마해영의 처지가 어떤지 모두 알지 않는가.”

한국야구 원조 홈런왕인 박영길 전 삼성 감독의 말이다. 마해영의 변신이 진화 과정을 거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어느 순간 다시 옛 상태로 돌아갈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김인식 한화 감독은 마해영의 ‘눈’에 주목한다. 김 감독은 타자들이 30세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결국 유니폼을 벗게 되는 가장 큰 이유로 스포츠 아이(sports eye)를 꼽는다. “투수의 공에 눈이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은퇴를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변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공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안 때문이라면 마해영의 재기는 힘들지 않을까.

가장 큰 무기는 마음의 안정이라고 한다. 그는 “2군행이 겁나지 않는다. 조급증도 버렸다”고 말한다. 밑바닥까지 떨어져 봤기 때문이다.
 
동대문-메이저리그-그리고 잠실

지난해만 해도 서재응과 김선우의 태도는 확고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야구할 생각이 없다는 것.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서재응은 탬파베이, 김선우는 샌프란시스코 마이너리그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졌다. 여기에 취업비자 문제도 겹쳤다. 2004년 이후 외국인으로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취업비자 획득이 쉽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소속일 경우 한국으로 일단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지난가을 이후 소속 팀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새 팀을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게 되면서 두산과 KIA에 유리한 상황이 계속됐다. 서재응과 김선우 모두 차선책으로 일본을 생각했으나 일본 구단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선택의 여지없이 귀향길에 오른 이들이지만 이들에 대한 고향의 환대는 극진했다.

서재응은 현재 KIA의 에이스다. 지난해까지 윤석민 외에 꾸준한 선발이 없어 고민했던 KIA로선 서재응을 획득하며 최고의 선물을 얻은 셈이다. 스프링캠프에서 부상한 오른쪽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도 꾸준한 재활로 많이 나아졌다. 김선우는 서재응에 비해 부담이 조금 덜하다. 개리 레스와 맷 랜들, 두 외국인 투수에 이어 3선발로 나선다.

입단 이후 행보도 사뭇 흥미롭다. 베이징올림픽 최종 예선에 참가할 대표팀을 선발하는데 서재응은 캠프에서 당한 부상을 이유로 합류를 거절했다. 김선우의 소속 팀과 대표팀 수장인 김경문 감독은 김선우의 입단과 동시에 “대표팀에 데려가겠다”고 했고 결국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대표팀에서 빠진 서재응은 시범경기에서 본격 테스트를 시작했다. 허벅지가 아픈 김선우는 대표팀에서도 통증을 다스려가며 훈련했다. 두 선수가 본격적으로 출전할 수 있는 시기는 4월 중순이 지난 다음이 될지도 모른다.

고교 시절(휘문고) 김선우는 최고였다. 동기인 서재응과 후배 김병현(피츠버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뒤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서재응이 2003~2004년 뉴욕 메츠에서 풀타임 선발로 나선 데 비해 김선우는 몇 차례 선발 뒤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곤 했다.

이제 3라운드. 약속이나 한 듯 둘은 한국에서 만났다. 승자는 누가 될까. 김선우-서재응이 선발로 나서는 두산-KIA의 맞대결은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빅카드다.
 
집 나간 장고는 언제쯤

수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임수혁을 돕기 위해 롯데는 매년 12월 일일 호프를 연다. 노장진이 찾아갔다. 아무도 다가가 말을 붙이지 않았다. 지난해 봄 팀을 무단 이탈한 뒤 임의 탈퇴 처리된 노장진은 수차례 구단에 다시 뛰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장진의 무단 이탈은 데뷔 팀인 한화를 거쳐 삼성과 롯데 등에서 수차례 거듭됐다.

김진우는 지난겨울 모교인 광주진흥고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무단 이탈과 잦은 음주 사고 등으로 팀의 말썽거리가 된 그는 지난해 상반기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다’고 호소하며 심리 치료를 받았다. 다시 무단 이탈을 반복하는 그에게 KIA는 임의 탈퇴 조치로 응수했다. KIA는 “김진우가 백배 사죄하고, 몸과 마음을 만들어 돌아오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강병철 전 롯데 감독은 “야구를 너무 잘한 게 이들의 원죄”라고 했다.

“인성교육 안 시키고,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엉덩이를 두드려 준 거야. 사고 치면 어른이 나서고, 학교가 나서서 무마하고… 이게 반복되면서 같은 실수를 해도 용서해 준다고 생각하는 거지.”

집 나간 장고는 언제 돌아올까. 영화에서처럼 마지막 순간 끌고 다니던 관에서 기관총을 꺼내 불을 뿜을 수 있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