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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현장에서>부산-DJ 逆風에 판세 혼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적으로 부산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고향이자 안방격이다.92년 14대 총선에서는 시내 16개 지역구 전부를 민자당이 싹쓸이해 정권창출 본거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었다.자연히 시민들 사이에서는 문민정부 출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넘쳤고 그 힘을 바탕으로 6共까지의 이른바 TK(대구.경북)시대를 마감하고 PK(부산.경남)시대를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시대를 연 주역답지 않게 부산의 선거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고 조용했다.경부고속도로가 끝나고 시내로 통하는 도시고속도로로 들어서 한참이 지나도록 벽보나 현수막 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서울 같으면 울긋불긋한 몇장의 현수막으 로 치장하기에 충분해 보이는 로터리 부근 전신주도 모두 맨몸이었다.
태반이 민자.무소속뿐이라는 기초 의원선거 분위기까지도 짐작이갔다.뒤꽁무니에 후보자의 대형사진을 어른 키 높이로 매단 스쿠터 예닐곱대가 한줄로 서서 달리는 것이 눈에 띄기는 했다.
대통령측근으로 민자당 사무총장을 지낸 3선의 문정수(文正秀)후보와 민주당 부총재로 청문회 스타인 노무현(盧武鉉)후보가 시장자리를 놓고 맞붙어 있었다.거기에 3共시절 서울.부산시장과 내무장관을 지낸 김현옥(金玄玉)후보,부산에서 구청 장을 지낸 배상한(裵相漢)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겉으로는 4파전이었다.
『부산에서는 이래저래 이변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盧후보가떨어지면 그많은 여론조사가 모두 엉터리가 되는게 이변이고,당선되면 집권당 본거지가 변심한 꼴이니 더 큰 이변이 아니겠어요.
』 법적으로 공표가 허용됐을 때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지지율에서 거의 모두 盧후보가 선두였다.차이가 꽤 많은 경우도 있어 이때까지의 여론조사 결과 대로라면「노무현 부산광역시장」일 수밖에 없어「이변」을 기대하는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기 에 충분했다. 이때문인지 盧후보 진영의 운동원들은 밝은 얼굴들이었다.57%인 20~30대의 젊은층이 지지기반이고 여성들의 인기도 높다는 자체분석이었다.연일 계속되는 TV합동토론회에서 盧후보는 지역정서를 고려해 金대통령.文후보와 민주화 ■쟁을 함 께 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文후보측의 분석은 달랐다.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부산사람들의 기질로 미루어 결코 金대통령을 외면하겠느냐는 기대였다.거기에 아시안게임과 삼성승용차 공장 유치 확정이 결정적으로 플러스 요인이라며 중앙정부와 연결될수 있는 실력자 임을 강조하기에 바빴다.관청이고 상가고 큰 건물에는 어김없이「경축 2002년 아시안게임 유치 확정」이란 대소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맘에 안들기는 문정수나 노무현이나 마찬가지지요.노무현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당 때문에 당선은 문정수가 될거라는 사람이점점 많아집디다만….』 (주)뉴부산택시의 운전사 文모(60)씨는 특히 김대중(金大中)아태재단이사장의 행보가 활발해지고 발언수위가 높아지면서 盧후보의 인기가 점차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이를 모를리 없는 盧후보도 기회만 있으면 金이사장의 유세는중단해야 한 다고 외쳐댔다.선거판에서는 적과 아군이 따로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선거 이야기를 할라치면 기업인.근로자.공무원 할것없이 이구동성으로 정부나 집권당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기 일쑤였다.이곳의 민심이 많이 달라졌음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30년 야도(野都)의 결과로 성장억제 도시로 낙인찍혀 이처럼 3難(교통난.재정난.용지난)을 겪는것 아닙니까.국회의원.대통령 다 뽑아준 후라고 그들이 우리한테 해준게 뭐 있습니까.이곳만 행정전문가 아닌 정치인을 공천한 것도 만만히 본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그러나 평소 무뚝뚝하고 적극적이라던 부산사람들도 이 부분만은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워했다.또 스스로 하기 보다는 서로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여 도무지 속마음을 읽기 가 어려웠다.
이때문에 이들이 어떤 변화를 얼마만큼 행동으로 보여줄지,그러다 결국 되돌아서고 말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상경할 수밖에 없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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