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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89) 서울 종로구 민주당 양경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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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경선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려면 경선을 이벤트로 만들고, 무엇보다 바람직한 후보들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당이 선의의 개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본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구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출사표를 던진 양경숙(42) 종로발전연구원장은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을 본선에 내보내면 선거에서도 지고 당의 정체성도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후 그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실시된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다. 지난 8일 그는 다른 경선 탈락자들과 함께 조순형 당 대표와 강운태 사무총장(공천심사위원장)을 상대로 공천무효소송과 공천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이 날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재심이 진행 중이며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이 정한 경선절차에 따라 결과에 승복한다는 서약서와 여론조사 비용 분담금을 내야 하는데, 내기도 전에 여론조사를 해 버렸습니다. 아니, 했는지도 확인이 안 됩니다. 공당으로서 당연히 밟아야 할 상식적인 절차를 무시한 셈이죠.”

그는 3대가 모여 사는 ‘종로 토박이’ 집안의 종가집 맏며느리이다. 여성신문사가 주는 ‘미래를 이끌어 갈 여성 지도자상’을 받았고, 서울시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매일시민신문사가 주는 ‘한국의정대상’도 탔다. ‘정치, 여성이 희망이다’란 공저도 냈다. 책 제목도 직접 지었다는 그에게 여성이 왜 정치의 희망인지 물었다.

“우리 정치가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부패·비리 등으로 불신 당하고 있는 건 정치가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정치를 할 때 비전이 생깁니다. 이제 여성들도 정치적으로 훈련이 됐구요. 정치 개혁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뿐더러,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는 것 그 자체가 핵심적인 정치 개혁이예요.”

그는 4,5대 서울시 의원을 지냈다. 시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재정경제위원장을 지냈고, ‘서울특별시 예산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이란 논문으로 연세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한 그는 상임위도 재정경제위를 희망했다. 석사학위 논문의 핵심적인 파인딩이 무엇인지 물었다.

▶ 양경숙 원장은 “민주당 분당은 옳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권을 재창출한 평화·개혁 세력으로 하여금 이번 총선에서 서로 싸우게 만든 지난해 분당은 명분도 없고, 열린우리당의 행보는 배신 그 이상의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과거 종로에서 출마했고 사저도 자신의 선거구에 있던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가까웠지만 명분 없는 권력을 쫓아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지미연 월간중앙 기자

“서울시 재정의 운용이 투명하지 못하고 예산 편성이 비과학적이라는 겁니다. 거둔 세금을 재정을 통해 고스란히 세입자들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서울시만 하더라도 한 해에 몇 조원이 남아 추경예산을 편성합니다. 이른바 불용액이 무려 15~20%나 돼요. 예산을 보수적으로 편성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산 감시가 중요합니다. 예산서엔 모든 게 담겨 있어요. 환경에 진짜 관심이 있다면 환경 예산을 많이 편성해야죠. 정책이 곧 예산입니다.”

재선 시의원 시절 그는 그때까지 수의계약으로 결정하던 서울시 금고(현금 출납 기관)를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케 함으로써 연간 몇백억원의 시 예산을 절감토록 했다. 이를 관철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고 그는 말했다. 특정 은행이 시금고가 되는 건 그 자체가 일종의 특혜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쟁입찰을 할 때 시에 대한 출연금을 적어 내도록 했고, 서울시가 이를 통해 9백50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이 그 방증이다. 그의 이런 경험과 지식이 등원하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물었다.

“이런 예산 시스템과 재정 운용의 절차를 체크하는 국회의원들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예산 전문가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서울시가 복마전이라지만, 국가 재정은 서울시보다 단위가 더 클 뿐 아마 이런 문제들이 더 심할 겁니다. 국회에 들어가 정부 예산은 물론 현금 관리, 공기업 기금까지 국민들한테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공무원들이야 싫어하겠죠.”

그는 80년대 내내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에 몸담았다. 민주당에 영입된 후 서울시 의원 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 당의 종로구청장 경선에서 1위를 하는 등 차세대 여성 정치인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 신인 아닌 ‘정치 신인’이 보는 민주당의 활로는 뭘까?

“벼랑 끝 위기입니다. 서청원 의원 석방 결의안 표결 당시 한나라당과의 공조 등으로 당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주 개혁 세력의 상징이었던 당이 근본이 다른 당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지지가 실망으로 바뀐 거죠. 열린우리당과의 개혁 경쟁에서도 밀렸구요. 이제라도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우선 공천 개혁을 완성해야 합니다. 단적으로 철새 정치인과 비리 연루 정치인을 이번 공천에서 배제해야 합니다. 경륜 면에선 뒤지더라도 깨끗하고 참신한 사람,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내세워야 합니다.”

이필재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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