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사랑하는공간>옥상정원-李淳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메마르게만 느껴지는 도시생활.사노라면 문득 한 줌의 흙,한 포기의 풀이 그리울때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고향인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지 33년째를 맞고 있는 중구신당1동 이순재(李淳宰.48)씨는 20여평 남짓한 옥상의 절반을 흙내음이 흠씬 풍기는 정원겸 텃밭으로 꾸며놓았다.
약1m 높이의 시멘트 벽을 치고 그안에 흙을 담아 만든 미니텃밭에는 백일홍.덩굴장미.포도나무.대추나무.채송화.돈나물.호박.오이.참외.작약.고구마.감나무.딸기 등 그야말로 없는게 없을성 싶을 정도.
신선초.케일.상추.열무.무가 자라고 있는 하얀 스티로폴 박스곁에는 예쁜 자태를 자랑하는 화초들이 화분에 담긴채 나란히 줄지어 있어 푸근하고 조화로운 소자연을 연출하고 있다.
한켠에는 1평 정도의 수조(水槽)마저 있어 한결 운치를 더해준다. 시구문 시장에서 「아리랑 슈퍼」를 13년전부터 운영하는李씨는 이 공간에서 훈훈한 고향산천을 맛본다.
그의 옥상정원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랑방도 되고 슬하의세자녀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기도 해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인 셈.
『그동안 모은 돈으로 지난 88년 한옥을 구입했습니다.그 집을 헐고 3년전 3층 다가구 주택을 지었어요.마당이 없어지니까너무 허전할 것 같아 맨 위는 기와로 지붕을 얹지 않고 평평한옥상으로 만들어 이런 공간을 마련했지요.』 현재 집주인 李씨를포함,7가구가 살고 있는데 같이 사는 사람들도 李씨 덕(?)을많이 본다.한 두 그루에 불과하니 열려봐야 얼마나 열릴까마는 포도.수박.참외.감.딸기를 혼자 먹어치우는 일이 없다.「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을 李 씨는 「옥상에서 정이 난다」로 바꿔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정원에는 고가옥을 헐때 나오는 흙을 트럭 2대 분량 가까이갖다 부었습니다.지금도 틈이 나면 한약 달여주는 집을 돌아다니면서 한약찌꺼기를 가져다 뿌려주는게 「거름주기」의 전부입니다.
가끔씩 물만 뿌려주면 되니까 별로 어려울게 없습 니다.』 화분은 주로 종로5가에서 사오지만 과일이나 야채는 씨앗을 심어 가꾸는게 李씨의 철칙.그래야만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다. 대전 문창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李씨는 최근 자비(自費)로 『긴 세월 짧은 순간』이라는 책도 발간,후원금 성격으로 모은 2백만원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金明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