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캘린더] 얼음 들판에 놓인 절망 '겨울 나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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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서른살의 슈베르트는 지독하게 가난했고 병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독일 작가인 빌헬름 뮐러의 시 24편에다 녹였다. 한겨울의 이른 새벽, 젊은이는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을 향해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의 마지막 가곡이 돼버린 '겨울 나그네'다. 절망적인 작품의 내용마냥 뮐러는 같은 해 33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다. 슈베르트 역시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의 비극적인 생애가 음표마다 절절히 배어있는 '겨울 나그네'가 서울 무대에 오른다. 그것도 뮐러의 시와 슈베르트의 음악을 절묘하게 소화하기로 유명한 이언 보스트리지(40)가 부른다. 2001년 11월로 예정됐던 첫 내한공연이 연주자의 건강 때문에 무산된 지 꼭 3년 만이라 더욱 반갑다.

영국 출신인 보스트리지는 '이지적인 테너'로도 유명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옥스퍼드대에선 역사학 박사까지 받았다. 그러다 스물아홉의 늦은 나이에 음악에 발을 들여놓았다. 성악에 대한 미련을 끝내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스트리지는 독일 예술가곡계에서 짧은 기간에 급성장했다. 지금은 차세대 '거장'으로 거론될 정도다. 그의 무기는 물씬하게 배어나는 서정성과 이지적인 음색의 궁합이다. 보스트리지는 특히 슈베르트 가곡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그만의 독창적인 해석은 평론가들로부터 "독일의 페터 슈라이어의 뒤를 잇는다"는 찬사까지 끌어냈다. 시어(詩語) 속에 출렁이는 감성을 바늘 같은 정교함으로 뽑아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겨울 나그네'전곡을 들을 수 있다. 보스트리지와 종종 호흡을 맞췄던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드레이크가 반주를 맡는다. 17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10만원. 02-751-9606.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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