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자 읽기] '뿡뿡' 거리는 아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부부 사이에 갖춰야 할 예의와 솔직함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결혼 20년째인 H씨(48)는 언제부터인지 마냥 편한 것만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수시로 불쾌감과 서운함을 느낀다.

그는 대학 때 문학을 전공한 낭만파다. 대부분 중년 남성들처럼, 그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에 매인 처지지만 지금도 눈.비오는 날, 우산 없이 길을 걷다가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젖은 몸을 녹이곤 한다.

아내는 학창시절 동아리 모임에서 만났는데 활발한 성격에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내는 능력있는 여자다. 결혼 후에도 살림살이나 아이들 키우는 일, 시댁과의 관계 등 무엇하나 큰 문제 없이 잘 꾸려왔다. 이 점에 대해선 H씨도 아내에게 만족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자신을 남자(?) 취급하지 않는 아내의 행동은 정말 못마땅하다. 무심코 트림하는 일은 예사며 방귀를 뀔 때도 전혀 부끄럽거나 미안해 하는 내색을 안 한 지 오래다. 옷도 아무 데서나 훌렁훌렁 갈아 입고 심지어 속옷 바람에 집안을 활보하고 다닐 때도 있다. 물론 아내의 처진 가슴과 불룩 튀어나온 뱃살은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도 잠자리를 함께해야 할 여자'란 생각이 스칠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H씨는 부부 간 성생활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젊을 때만은 못해도 성행위를 통해 남성의 성을 발휘해 보고 싶은 욕구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정작 집에 돌아와 아내와 지내다 보면 성욕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하루는 큰 마음 먹고 아내에게 "당신도 여성미를 가꿔보면 어떠냐, 몸짱 열풍도 부는데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처럼 운동하면서 몸매관리를 좀 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우리가 청춘 남녀인 줄 아느냐, 이 나이 되면 원래 부부는 정 때문에 살게 마련"이라고 반박하는 바람에 더 이상 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허탈하다. 때론 낯선 여성과 멋진 연애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윤리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뒷감당할 엄두가 안 난다.

H씨가 진심으로 아내와 사이좋게 해로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아내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잉꼬부부라 할지라도 몇 십년 함께 살다보면 권태기나 위기의 순간은 있다. 그런 순간을 그때 그때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방치하다간 남남처럼 지내거나 자칫 파경을 맞을 위험성도 있다.

우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기본 에티켓을 안 지킬 땐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상한다는 말부터 해보자. 또 여성미 있는 아내가 진정으로 그립다는 심정도 밝혀야 한다. 처음엔 아내가 자신의 무심했던 마음이 부끄러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몇 달간 시간을 두고라도 반복해서 진심을 아내에게 전달한다면 아내도 슬기로운 해결책을 향해 점진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다. 파경을 원치 않는 한 아내도 섹스리스(Sexless)부부나 남편의 외도 위험을 간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