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프렌들리? … 중기엔 남의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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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8일 경기도 광주시 광남동 주민자치센터 강당. 윤용로 기업은행장과 광주지역 중소기업인 80여 명 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중소기업인들은 “은행 문턱이 너무 높다” “실효성이 없는 대출 제도가 많다”는 등 평소 은행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사항을 쏟아냈다. 읍소하다시피 지원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인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윤 행장은 “중소기업에 보다 많은 지원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기업인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쏟아지고 은행들도 대출을 약속하지만 그때뿐”이라며 “이젠 별 기대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지금은 보릿고개”=음료수 병 뚜껑을 생산하는 D사의 관계자는 “원료인 철재 가격은 지난 2년간 35% 올랐지만 병 뚜껑 납품 단가는 오히려 내렸다”며 “요즘은 보릿고개란 말이 없어졌지만 중소기업엔 지금이 보릿고개”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기업인들은 은행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은행 문턱은 여전히 너무 높다는 것이다.

철강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원자재 구매 특별자금을 지원한다고 해 알아봤더니 절차가 까다롭고 대출 기간도 너무 짧았다”며 “중소기업이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땅이나 공장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도 맘처럼 쉽지 않다는 게 중소기업인들의 불만이다.

T공업 관계자는 “땅을 담보로 대출받은 뒤 추가 대출을 하려면 감정을 새로 받아야 한다”며 “한푼이라도 아쉬운 중소기업 입장을 고려해 시가 조사 등으로 재감정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점장이 자주 바뀌어 업무에 연속성이 떨어진다거나 수도권 공장 설립 규제가 빨리 해제될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는 중소기업인도 있었다.

◇올해 더 힘들어진다=새 정부는 의욕적으로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와 경제단체는 합동으로 ‘중소기업 현장방문단’을 구성해 각종 애로 사항이나 규제 사항을 찾아 이를 해결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관련 민원을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는 ‘기업도우미센터’도 신설된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의 반응은 차갑다. 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새 정부가 얘기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중소기업엔 남의 나라 얘기”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어놓는 나열식 전시행정 말고 획기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산업구조 개편을 포함한 큰 그림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경쟁력 없는 기업은 업종 전환을 유도하고, 기업 간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정책과 지원의 틀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도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5년 12조8000억원이던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해 68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각종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힘들어지면서 돈 굴릴 곳이 없어진 은행들이 앞다퉈 기업 대출을 크게 늘린 까닭이다. 그러나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여기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금감원은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 ‘주의’를 요구했고, 은행들도 대출을 줄여 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40조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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