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몽준 브랜드는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어제 정몽준(57) 부부가 서울 사당3동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인왕산 ‘큰바위 얼굴’이 보인다는 대지 약 900㎡(270여 평)의 평창동 저택을 뒤로 하고 말이죠. 이번 총선에서 영지처럼 편안했던 ‘울산 동구’를 버리고 ‘서울 동작을’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동작을은 1988년 이래 다섯 번 선거에서 네 번을 김대중·노무현 당 사람들이 승리한 호남 강세 지역입니다. 상대방은 대선에서 610만 표를 얻은 정동영이고요.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몽준의 모험엔 내면의 야성과 자존심, 명예 심리가 꿈틀거렸을 겁니다.

정몽준은 5선 의원입니다. 현 국회의원들 가운데 정치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의 정치 동기생은 이상득(73·포항남-울릉) 국회부의장과 강재섭(60·대구서)한나라당 대표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그의 정치 후배 격입니다. 재선 경력에다 현대가의 샐러리맨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스토리가 정몽준에게 자극을 줬을 겁니다. 장충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박근혜는 정몽준보다 늦게 정치를 시작했지만 ‘선거의 여인’ ‘미다스 손’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컸습니다.

정몽준의 모험은 멀고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나라당 총선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는 “주변에선 내가 함정에 빠졌다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더 열심히 해서 극복하려 한다”고 답합니다. 7월 전당대회에선 강재섭-이재오의 거친 당권 다툼에 참가하겠다고 합니다. 자기 계파가 없기 때문에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정몽준의 시선은 더 멀리 2012년에 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 사람들은 정몽준의 차기 대선 출마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011년에 있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불출마할 것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옵니다. 가장 큰 경쟁자는 박근혜로 보고 있죠. 박근혜 쪽 역시 정몽준의 파괴력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몽준의 브랜드입니다. 정몽준이 대선 시장에 내보일 상표가 뭐냐는 겁니다. 상표가 불분명한 정치인은 국가 지도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브랜드란 김영삼의 민주화, 김대중의 남북 화해, 노무현의 정치개혁, 이명박의 성장과 실적 같은 거죠. 브랜드는 정치인이 자기 인생을 통해 구현한 공익적 가치입니다. 거기엔 내적 체험과 비전, 프로그램이 응축돼 있습니다. 광고 카피 생산하듯 금세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죠. 이명박의 청계천과 성공 신화, 박근혜의 원칙과 정체성, 정동영의 용기와 소통은 그들의 인생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정치인은 브랜드로 유권자의 판단을 받습니다.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지요. 그런 가운데 위대한 지도자가 키워지는 거죠.

정몽준은 월드컵으로 국민 에너지를 결집한 체험을 갖고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공익적 가치도 구현했어요. 하지만 그 브랜드는 축구에서 정치로 경계선을 넘는 순간 약해졌습니다. 정체성은 모호했고 선택은 우유부단했지요. 노무현 지지 철회는 ‘우왕좌왕 정치인’의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정몽준이 정치에서 입은 상처는 현대중공업의 왕국에서 무소속 생활 20년을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곳에선 야성과 치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그가 이제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사당동에 뛰어든 건 정치에서 입은 상처를 정면으로 치유해 보겠다는 결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자기 브랜드를 개발해야 합니다. 서양 속담에 “자기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비관론자가 되고 남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낙관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몽준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정몽준이 개발할 브랜드엔 3조원 재산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들어가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벌었는데도 300억원 재산이 문제가 됐었죠. 자기 일보다 남의 일을 생각하는 이타주의적인 삶, 여기서 정몽준 정치 브랜드의 실마리가 풀릴지 모릅니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