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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세월따라>강릉 대기리.정선 구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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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람의 발길이 가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에 세월이 흐르면어느덧 인간사 구성진 이야기가 새록새록 쌓이게 마련.아름다운 우리의 산야 뒤안길에서 접할 수 있는 진솔한 삶의 얘기를 「길따라 세월따라」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註]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정선아리랑 중에서〉 강원도 오지마을중 하나인 강릉시왕산면대기리3구에서 언덕상회를 운영하는 이동선(李東仙.59)씨는자신의 두평 남짓한 방에서 낮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구성지게 정선아리랑을 뽑는다.
『2백년전 처음 사람의 발길이 닿았던 이곳은 구절리까지 빠른걸음으로 걸어도 왕복 5시간이 걸릴 정도의 오지였지.한때는 2백여가구가 살 정도로 규모도 컸지만 지금은 12가구만 남아 있지.25년전만 해도 구절리에서 배나드리까지는 찻 길이 없어 오솔길을 따라 걸어다녀야 했는데 그 길을 마을 주민들이 농한기를이용해 직접 발파작업을 해가며 10년간의 공사끝에 차량이 통행할 정도의 길로 넓혔지.그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여.』 정선읍에서 약 35㎞ 떨어진 대기리에는구절리로부터 동초밭.가락동.한터.배나드리등 옛지명을 가진 곳곳에 2~3가구씩이 독가촌(獨家村)을 이루고 있다.지난 80년대중반만 해도 주민수가 1백여명이나 됐지만 일터를 찾아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 이제는 노인들만 마을을 지킨다.현재 25명 남짓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50세이상인데 이규복(李奎福.85)옹이 최고령자다.
산비탈을 개간해 감자.옥수수농사를 주로 하며 집에서 먹을 정도의 고추농사를 지어 겨우 먹고 살 정도다.그러나 개중에는 토봉을 치는 집도 5가구가 된다.40년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 남자들은 근처 산에서 벌목한 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서울까지 운반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뗏목생활은 한번 집을 떠나면 두달정도가 소요됐으며 서울가서 목상(木商)에게 뗏목을 팔면 여비를 빼고도 소 1마리값이 손에 쥐어졌다고 한다.그러나 아우라지에서 뗏목을 만들어 서울로 떠날 때쯤 되면 주막네들이 장구와 막걸리통을 뗏목에 싣고 보름동안 동행을 했기에 막상 집으로 올 때는여비만 달랑 남았다고 한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댕기를 매 처녀티가 줄줄 흐르는 여자를보고 어디 안넘어갈 남정네가 있었겠어.그러니 소 1마리값은 모두 제 입속으로 털어넣었던 게지.「정선 꽁지갈보」라는 말도 그때 생긴 것이여.』李씨의 말이다.
배나드리에서 구절리까지의 송천계곡은 그 길이가 50리.원래 송천계곡은 좁은 개울이었다.그러나 60년전 병자(丙子)년 홍수에 논밭이 떠내려가 강폭이 지금과 같이 넓어졌다.당시에는 길이험해 벌목한 나무를 좁은 개울에 넣어 보(堡)를 쌓았다가 물이어느 정도 차면 보를 터뜨려 흐르는 물에 나무를 구절리까지 실어보냈다.
5월 중순이면 송천계곡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주위를 붉게물들인다.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송천을 불강이라고도 부른다.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핏빛같이 붉은 단풍이 온 산을 수놓지만 이곳 주민들은 겨울 설경을 제일로 손꼽 는다.
한편 마을주민들은『말도 말아요.지난달 횡계 도암댐에서 수문을열어 물을 방류했을 때는 완전 똥물이었지요.그래도 지금은 나은편이에요.그러나 1급수였던 송천은 이제 죽어버렸어요.송천은 정선군민 뿐 아니라 수도권 시민들의 생명수인 한 강의 원류예요.
대관령 목장에서 나오는 가축 배설물이 도암댐으로 흘러들자 관리소에서 댐을 청소한다고 수문을 열어놓으니 그것이 어디로 가겠어요』라며 1급수였던 송천이 뿌옇게 변해버린 것에 분개해 한다.
송천은 임계에서 내려오는 골지천과 아우라지에서 합쳐져 조양강이 돼 정선을 지나며 영월에 이르러 동강이 된다.동강은 평창에서 내려오는 서강(평창강)과 합해져 남한강이 된다.그러므로 송천은 한강의 원류중 하나인 것이다.
구절리에서는 동초밭~가락동~소란을 거쳐 한터에 닿았으며 강릉에서는 최근 도로 포장공사를 끝마친 배나드리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다리재를 거쳐 한터로 들어갈 수 있다.강릉에서는 대관령으로가는 길의 상산에서 삽당령을 넘어 임계로 이어지 는 35번 국도를 이용한다.상산에서 배나드리까지는 약 18㎞의 거리.배나드리~한터,한터~구절리까지는 각각 비포장도로로 8㎞와 9㎞거리다. 旌善= 글 金世俊기자 사진 吳東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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