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후보鑑別 이렇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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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27선거전이 벌써 한창이다.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들 하지만 초반부터 정치판의 호흡은 거칠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보름간은 지난 대통령선거 이래 2년반만에 누리게 된 국민의「천하」다.이 보름천하동안만은 기성권력의 철옹성도 빠끔히 문을 연다.저 반성 모르는 오만한 정치인들도 이 기간에는 성밖으로 나와 몸을 조아리고 구걸의 시늉까지 한다.
시늉인줄은 뻔히 알지만 아첨이 싫지만은 않다.그러나 바로 그런 기분이 바로 정치인들이 쳐놓은 덫이기도 하다.알고 속는다는말도 있듯이 기분에만 취하면 모처럼의 귀중한 권리를 허투로 써버리기 십상이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투표날만 지나면 권력의 성은 다시 굳게 닫히고 그뒤 몇년동안은 아무리 애써도 넘겨다 보기조차어렵게 된다는 사실이다.눈을 부릅떠야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누가 누군지 알아야 찍지」가 대부분의 느낌이다.일단 동감이다.시.도지사 후보라면 어느 정도 알겠고 기초단체장 후보도 그런대로 알만 하지만 기초의원은 물론 광역의원만 돼도 누굴 무슨기준으로 선택해야 할는지 막막한 것은 모두가 마 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뜻밖에 쉬울 수 있다.후보들에 대한 충분한지식이 없을 땐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먼저 가려내 판단하는마이너스 선택법이 더 쉽고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우선 직업이 지역구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후보는 최우선적으로 배제해야 한다.이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곧 도착할 개인홍보물이나 선거공보의 학력.경력란에서도 선택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가령 필자는 거기에 ○○대학최고지도자과정이란 것이 등장하면 일단 제쳐 놓을 생각이다.
이른바「평생교육」을 반대할 생각도,경영난을 해소하려는 사학관계자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단지 많은 사람을 사귀기 위해 다녔다고 해도 탓하지는 않겠다.그러나 그것을 학력이나 경력란에 올릴 자랑거리로 삼는건 다시 봐야겠다.
더구나 그 과정의 수료가 둘이상이 된다면 선택은 한결 쉬울 것같다. 후보자의「말」도 중요한 판단자료로 삼을 작정이다.누가 써준 연설문이나 읽거나 괜히 고래고래 소리나 지르는 후보자라면 찍지 않겠다.
영국의 명(名)총리 처칠이 그냥 명연설가가 된 건 아니다.연설문을 늘 대여섯번이나 고치며 준비를 했고,그런 뒤엔 녹음을 해서 듣고 다시 말을 고치는 힘겨운 노력이 명연설가가 되게 했다. 달변의 명연설가만 뽑혀야 한다는 건 아니다.「말」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생각을깊이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초의원이라면 또 모르겠다.그러나 광역의원쯤만 돼도 그가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설득력있게 표현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정치인으로서는 물론 주민대표로서도 불합격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후보자의 가족도 찬찬히 살펴보겠다.후보자의 인간됨됨이나 가정생활은 그 자신보다도 부인이나 자녀를 통해 더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정당이 후보자 공천때 반드시 부부동반으로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몇가지만 열거해보아도 후보선택이 반드시 암중모색(暗中摸索)이지만은 않다.문제는 조금이라도 나은 후보를 고르려는 유권자들의 성의다.
공짜는 없지 않은가.「보름천하」의 수확도 노력한 사람만이 거둘수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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