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특징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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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40년대말 헨리 무어,60년대의 로버트 라우센버그,그리고 2년전 황금사장상을 받았던던 백남준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한사람의 화려한 현대미술스타를 탄생시키면서 지난 10일 공식개막됐다.비엔날레 창설 1백주년 을 맞아 자르디니 공원안의 각국관과 베니스시내 도처의 미술관.화랑에서 1백여개가 넘는 특별전이 꾸며지는등 성대하게 개막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러나 예년과 달리 이슈가 없는 비엔날레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문제제기,즉 임팩트가 없는 평범한 비엔날레로 인상지워진 가장큰 이유는 각국관 전시내용도 그렇지만 매번 화제를 뿌려왔던 젊은 작가초대전인 아페르토전이 취소된데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불참은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돈된 작업을 통해 국가적인 스타작가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의반작용으로,적어도 현대미술에서 실험의 시대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는 얼마전까지 가장 강력한 실험매체였던 비디오가 마치 캔버스처럼 영상을 통해 작가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손쉽게 사용되고 있는데서도 찾아볼수 있다.한국작가 이우환씨의 말처럼 비디오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은 비디오의 매체적 특성을 완전히 파악해 주제를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뛰어난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었다.
미국의 비디오작가 빌 바이올라의 작품에서도 이 점을 강하게 느낄수 있다.
바이올라의 작품 4점을 전시한 미국관은 입장을 위해 30분이상 줄을 늘어서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는 비디오화면을 TV라는 제한된 모니터에서 끌어 내 벽에 투사하거나 투명한 망에 투사하는등 영상자체의 공간화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별』과 같은 작품은 고대 로마의 의상을 차려입은 영상속의 인물들이 신전(神殿)을 배경으로 포옹하는 장면을 느리게보여주면서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고전회화인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기술을 구사,「움직이는 고전회화」라는 별명을 듣기도했다. 또 한가지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을 꼽으면 단연 동양미술의 부각이다.
한국관이 아마도 금세기 마지막이 될 독립관으로 세워져 각국의눈길을 끌었으며 한국.일본.중국작가들로 구성된「아시아나」특별전이 팔라초 벤드라민 칼레르지에서 열려 동양미술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대만은 자르디니공원을 벗어나 시내 선착장 바로 앞인 두칼레궁전의 옛 감옥자리를 빌려 4명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했다.이번에가장 주목받은 특별전 「인간신체,얼굴의 역사」전에도 파리에서 활동중인 중국작가 4명이 초대돼 중국.대만의 현 대미술수준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장려상을 받은 전수천의 토우작품은 산업쓰레기로 상징되는 현대문명과 대비되면서 각국에서 온 16개 TV방송국에 인터뷰가 소개되는등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일본관 참가작가로 출품한 최재은씨는 자연과 인공,생명과 무생명의 관계를 공간적인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일본관 건물외벽을 온통 화려한 플라스틱 재료로 감싸 비엔날레에서 가장 현란한 작업을 선보인 작가로 꼽히며 한때 수상후보중 한사람으로 거론기도 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인상적인 것은 비디오매체의 사용이 일반화됐다는 점과 함께 사진을 미술영역에 깊숙이 끌어들이거나 생태학적위기를 작품의 테마로 삼은 진지한 작업이 많았다는 점.노르웨이작가 퍼 매닝은 지느러미가 잘린채 유영하는 바 다표범의 대형사진을 내걸어 생태학적 문제에 접근했으며 덴마크의 존 올슨은 새.쥐.곤충.뱀등 온갖 생물들의 사체를 그대로 진열해 마치 자연사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시도했다.생태계의 위기가 절박함을알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에 가장 주목을 받은 전시는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파리 피카소미술관장 클레르가 기획한 「인간 신체,얼굴의 역사」전이었다.
이 전시는 인상파 이후 현재까지 미술가들이 신체의 모습,특히얼굴의 모습을 다룬 작업만 3개 전시로 나눠 기획하면서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성공적인 특별전이라는 평을 들었다.
특히 1895~1965년 사이를 다룬 팔라초 그라시의 제1부전은 마르셀 뒤상과 로댕,그리고 드가에서부터 지난 50년간 패션사진의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인정받는 리차드 어벤든의 대형 누드사진까지 6백여점을 27개의 크고작은 방에 펼 쳐 놓았으나,전시기획이 의도한 것을 일반관람객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아차릴 수 있어 뛰어난 큐레이팅 솜씨라는 호평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전체 인상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사조가 나타나고 교류되는 현장으로서의 신선함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의 진보적 작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비엔날레 무용론(無用論)과 겹쳐지며 베니스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의 현장으로서 과거 1백년 동안 누렸던 위상이 아마도 이번1백주년전을 계기로 상당히 변화할 것이라는 예감 까지 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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