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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책을 쉽게 구해 읽을 수 없던 곳에서 살았던 1년반정도의 기간이 있었다.책꽂이에 꽂힌 고작 서너권의 책.쉽게 읽어버리면 읽을거리가 없어질까봐 안읽히는 책들만 골라 꽂아놓았더니 끝내 먼지만 쌓여가던 책들.그때 「즐거운 책읽기」란 얼 마나 꿈같은일이었던지.
다시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몇권의 소설을 손에 넣었다.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책읽기의 미덕은 그저 잘 읽히는 것,그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일종의 뼈저린 경험하에.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은 잘 읽히는 책이다.젊은 작가의젊지 않은 감수성이 우선 돋보인다.그는 어떻게 그렇게 숱한 해학의 언어들을 담아낼 수 있었던가.그의 연보에 의하면 그는 1년반동안의 방위생활도중 신기철.신용철 공저의 『 새 우리말 큰사전』을 독파하며 우리말 어휘.어구.속담등을 대학노트에 기록,정리했다고 한다.「우리말」을 「나의 말」로 만들어버린 그의 성과가 놀랍다.평자의 말처럼 이 소설은 「한마당 흥겨운 언어의 잔치판」인 것이 분명하다.이 소설은 연작소설이다.아마도 작가가유년기를 보냈을 서울의 어느 변두리 달동네의 이웃들이 살아가는,또는 살아갔던 이야기다.「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비슷하게 붙어있는 이같은 종류의 몇몇 책들을 이미 본 바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도시빈민의 테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불안한 직업,노름과 술로 탕진되는 인생,숱한 폭행과거리낌없는 매음.그들의 삶은 일종의 수렁이다.그들은 일종의 수렁에 빠져있다.작가는 그들의 수렁 속 삶을 그저 묘사한다.그들에게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재촉하거나 소리치지 않는 것이다.이것은 이 소설의 한계이면서 미덕이다.그들이 단지 그들의 삶으로서만 바라보여지는 것.그 안에서 물음표 따위를 찾으려 한다면 그건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소설의 화자가 불쑥 1인칭으로 돌변해 작가의 감성으로 그들을바라보고,그 아픔이 자신의 것으로 공유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조차도 작가는 조심스러워보인다.그는 그들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재단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자기에 대한 애정이 또한 아니었을까.그들을 통해 작가 자신의 어느 한 부분,지나간 시대의 궁핍을 돌아보고 싶었을 희망.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말한다.『우리가 앞을보지 않고 슬그머니 뒤돌아볼 때가 제일 위험스럽 다는 것을 안다』고.그래서 그는 지나간 시대,그 속의 「그들」과「자기」를 되돌아보는 일을 앞을 보기 위한 이유로 하고 있는 것이다.앞을보기위해서! 그 조심스러움을 누가 모르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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