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구락부 ‘제2 전성기’ 100년 전 조선 넘보던 열강의 사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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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건립된 제물포구락부<上>와 최근 새로 리모델링한 건물 전경.

17일 오전 인천 송학동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바로 아래 응봉산 중턱. 인천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벽돌조의 고풍스러운 양옥 안. 러시아 민속춤 ‘칼링카’의 율동에 이어 러시아 민요 ‘백만 송이’의 아코디온 선율이 흘러 나왔다.

이 근대식 건축물은 한 세기 전 인천 개항기의 역사가 서려 있는 옛 ‘제물포구락부’(구락부는 ‘클럽’의 일본식 음역)다. 안상수 인천시장, 이바셴초프 주한 러시아 대사 등 100여 명의 한·러 관계자들은 이날 ‘러시아의 달’ 행사 테이프를 끊었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사상 최초의 러시아 한국 대표부도 제물포에 설치됐으며, 러일전쟁 당시 순양함 바략호가 일본 해군의 기습을 당해 자폭이라는 최후를 택한 것도 인천 앞바다”라며 인천과 러시아의 인연을 되새겼다.

제물포구락부는 19세기 말 인천항을 통해 밀려들던 열강국 외교관과 무역상들의 사교장이었다. 1901년 6월 문을 열어 미국·영국·일본·청국·독일 등 11개국 100여 명의 제물포 거주 외국인들이 드나들던 곳. 1913년 조계(租界·치외법권이 허용되는 외국인 거주지)가 폐지될 때까지 독일·영국·러시아·네덜란드·미국·일본인들이 저녁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곤 했다.

이 건축물이 이제는 한 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거듭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1년간의 리모델링 끝에 지난해 6월 재개관한 뒤 수개월 단위로 ‘회원국의 달’을 정해 전시회를 열자 시민들이 몰리고 있는 것. 인천문화원연합회 백성희 간사는 “과거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곳이 대등한 관계의 국제 교류를 증진시키는 민간외교의 장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6월 말까지 ‘러시아의 달’로 지정돼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

2층짜리(연면적 367㎡)인 이 건물은 원래 적색벽돌로 지었으나 현재는 외벽에 시멘트를 바른 상태. 검은색 마루바닥의 홀 중앙에는 술과 음료를 제공하는 바가 자리 잡고 있다. 한쪽에는 사교실·도서실·당구실 등의 작은 홀들이 배치돼 고풍스러운 맛을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설계했다. 1901년 6월 22일의 개관 기념 파티는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출입문을 따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조계가 폐지된 1913년에는 일본재향군인회, 1934년에는 일본부인회, 광복 후에는 미군장교클럽, 6·25 전쟁 중에는 인민군 대대본부 등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근대사의 영욕을 담고 있다. 이후 시의회·교육청·문화원 등으로 쓰이다 리모델링 뒤에는 박물관으로 개조돼 인천시문화원연합회가 위탁관리하고 있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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